'황해'를 보다. 향유/Movie 2011. 3. 6. 03:23

황해 논쟁 - 영화적인 것과 서사적인 것

<글 실는 순서>

'황해'를 보다. by 송윤호
[반박] 영화는 이야기를 지탱하는 도구인가? by 김믿음
[재반박] 개연성의 부족과 폭력의 스펙타클 과잉 by 송윤호
[반박] 우연성과 스펙타클의 매력적인 과잉 by 김믿음
[재반박] 납득 가능한 폭력의 잔혹함이어야 by 송윤호
[반박] 희미함의 연출 by 김믿음
'황해' 논쟁에 대한 관전평


'황해'를 보았다. 이천십년. 나홍진 작. 이천십일년 이월 십구일. by 송윤호

 

 

1.


 이 영화는 네 개의 챕터로 분할 구성된다. 첫 챕터에서는 연변의 이질적 정서를 배경으로 이야기의 동기인 구남(하정우)의 갈등이 소개되어진다. 그의 갈등은 아내를 서울로 보내느라 빚진 육만 위엔을 갚아야 한다는 것과 그 표층 아래로 공존하는 아내에 대한 불신으로, 그는 면가(김윤석)와의 이해관계에 의해 청부살인을 의탁받고 서울로 온다. 두 번째 챕터에서도 역시 구남을 구심점으로 서울에서의 그의 일련의 행위들을 나열하며 살인의 계획과정과 아내를 찾아다니는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전개시키며 진행되던 영화는 디-데이 당일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발생으로 가속한다. 세 번째 챕터부터, 다른 인물들의 개입으로 영화는 더 이상 구남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며 단조롭던 서사는 복잡해지고 혼란의 양상을 띤다. 복잡하게 얽힌 세 인물의 이해관계 속에서 영화는 내러티브를 최소화하고 인물의 행위묘사에 집중하여 겅중거리며 가속되며 그 속에서 극사실적으로 표현된 폭력을 집요하게 전시한다.



2.

 

 이 폭력은 영화가 전략적으로 차용한 그것이다. 영화는 내러티브를 풀어가는 과정에 집중하는 대신 피칠겁을 한 체 도끼로 살점을 찍고 개뼈로 뒤통수를 후리는 장면들을 롤러코스터를 타듯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서사로써 이야기를 풀어가기보다는 그 스팩터클에 내포된 어떤 기시감을 통해 주제를 환유하고자 하는 방식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들의 개입으로 두 가지 계획 모두 실패하고 도주하는 시점에서부터 구남의 행위는 오직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소급되고 이는 다큐멘터리에서 보아 온 생존을 위해 상처입은 체 달아나는 야생동물을 연상시킨다. 반면 무리에 둘러쌓여 개뼈를 뜯는 면가(김윤석)의 모습은 영락없이 육식동물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밥을 먹을 때와 똑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엠지, 엠지'를 중얼거리며 살인을 하는 그들은 이미 개병에 걸린 짐승에 다름 아니다. 연변이라는 이질적 장소를 태생으로 하여 조작된 어떤 야성의 표상으로서의 그들 성격이 서울에서의 태원(조성하)과 그 패거리들, 그리고 공권력을 위시한 모든 더 문명화된 인간들과 이미지의 차원에서 대비되어진다. 그리고 그들 간의 복잡하게 뒤엉킨 대결들에서 승리하는 쪽은 언제나 더 강한 생존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 다시 말해 '더 절박한 자'이다. 더 나아가 영화는 옆구리에 칼침을 여러 대 맞고도 스스로 늑대굴에 들어간 면가가 그들과 개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생략하고 오직 그가 상대의 두개골에서 손도끼를 뽑아내는 장면만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 더 절박한 자들을 초인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곧 죽음을 통해 그들을 물신화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어떤 야성에 대한 판타지 영화이다. 근래의 히어로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그들을 판타지의 영역에서 실존의 영역으로 내리는 경향을 가지고 제작되는 것과는 반대로, 이 영화는 실존적인 소재들을 주섬주섬 끌어모아 동일한 방식으로 한껏 포장을 하여 짐짓 다큐멘터리적인 것인 양 굴지만 실상 그 본질은 영화 속 스팩터클이 내포하고 있는 야생성의 기시감을 통해 '더 절박한 자가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이데올로기화하는 판타지이다.



3.

 

 이를 위해 영화는 인물들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사건의 동기로써 제시되는 구남의 갈등을 제외하고는 모든 인물들은 명확히 설명되지 않은 체 러프 스케치에 그친 초상화처럼 피상적인 모티프의 수준에서만 머무르고, 그럼으로써 영화는 그들의 행위묘사에 집중하며 이 표상으로써의 인물들 간의 충돌의 양상을 포착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그것을 알레고리적으로 읽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이 선택이,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애초 구남의 갈등은 면가와 직접적으로 접하는 지점이 없으므로 사건들의 연결고리로 태원이 개입되지만, 셋의 관계 역시도 단지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추격전의 표피적인 인과성만 희미하게 제시할 뿐 각자 자신만의 영역에서 서로 상대가 알아듣지 못할 혼잣말만을 중얼거리는 그들은 서로를 직시하지도 상대를 간절히 원하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구남은 구남의 영역에서, 면가는 면가의 영역에서, 태원은 태원의 영역에서 자신의 이유만 제차 확인할 뿐,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갈등을 주고받지 않고 오직 피로써만 소통한다. 이는 감독의 전작인 <추격자>에서 김윤석의 캐릭터가 극이 진행됨에 따라 외적인 인과와는 관계없이 서로간의 갈등을 주고 받으며 하정우를 잡고자 하는 내적 동기를 명확히 하는 것과 대비된다. 따라서 영화는 그들 사이의 갈등의 중첩을 통한 드라마적 갈등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그 결과 영화가 전략적으로 선택한 반복되는 폭력과 낭자하는 피는 관객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한 심리적 당위를 가지지 못한 체 단지 과잉된 자극으로 영화 전반에 부유하며 불쾌감을 불러온다.

 

 

4.

 

 이 지점에서부터 영화는 표류한다. 견고한 내러티브가 받쳐주지 못한 폭력의 전시는, 발기부터 사정까지의 실질적 자극을 위해 어설픈 설정을 빌려오는 포르노의 그것으로 전락해 버리며 당초의 목적을 담지하지 못한 체 그 효용을 상실한다. 극의 통일성을 지탱해주던 스팩터클이 무너져 버리자, 힘겹게 봉합되어 있던 모든 요소들은 사분오열하며 역으로 독이 되어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전체적인 모티프적 통일성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부조리함의 정서의 삽입으로 판타지를 실존의 영역에 고착시키며 중화시켜 그 파급력을 획득하려던 시도였던 구남의 두 가지 갈등에 대한 두 가지 결말은 레지던트 이년차의 서투른 봉합처럼 쉽게 풀려버리면서 단지 사족이 되어 영화의 다른 것들을 진부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 악순환은, 이렇게 견고한 내러티브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영화의 의의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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