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톺아보기 2] 자율과 타락 해석/View 2011. 3. 3. 18:05


"타락의 결과로 생긴 첫째 변화는 문화가 자율적인 방향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법 아래서 문화 명령을 수행하는 대신, 그 법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행하게 되었다. 오늘날 문화 전반과 예술은 흔히 우상 숭배나 신성모독적 쾌락과 연관되어 있다. (중략) 인간은 자기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중략) 죄와 자율에 빠지긴 했으되 피조물은 역시 피조물일 따름이다. 자율은 오직 <거짓된 관계의 자율이요 가장된 자율>일 뿐이다. 자율이 소외, 불안, 허무, 무의미 등을 낳는 것이 바로 이런 까닭이다.” <신국원의 문화이야기> 중

 
 

자율은 자기 자신이 삶의 입법자가 되는 것이다. 자율적인 것은 책임을 본인이 진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구석이 있지만, 고립된 결정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그래서 자율을 강조한 근대는 ‘주체중심주의’라는 오명과 함께 무너진다. 그 후 근대에 대한 비판으로서 ‘타자’에 대한 담론이 범람한다. 기독교는 그 중 절대적 타자인 신에 대해 말한다. 그 신에게 순종하며 피조물로 살아가는 것이 전적으로 부패한 세상에서의 유일한 구원이다.
 
하지만 오늘날 절대적 타자로서의 신은 전근대적인 것과 다른 방식의 관계 맺기를 말해야 한다. 단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회복해야한다는 이야기로 충분하지 않다. 창조주는 절대적 타자이기 때문에, 유한한 피조물이 의미화 할 수 없는 존재다. (이 점은 욥기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특별계시인 ‘성경’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해석’이라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신과 피조물 사이에는 늘 어떤 매개가 요구된다. 그것은 권력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회복’을 말하면서 ‘매개’ 혹은 ‘권력의 문제’없이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by 변칙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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