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소설 전복적으로 읽기 - 김진영 향유/Book 2011.02.23 15:25





소설 전복적으로 읽기: <마담 보바리> - 김진영

* 이 색은 북클럽에서 나온 부연 설명입니다.


사실주의적 낭만주의 / 낭만주의적 사실주의 / Realistic Illusion

- 객관적 사실 + 낭만적 욕망.
- 외과의사적 시선(시적 언어나 메타포 없음).
- 소시민의 삶에 대한 비참함과 시민 부르주아에 대한 냉소.

엠마의 조건

- 엠마는 저 너머의 삶에 대한 욕망이 있다. 소시민과 다르다.
- 기질Temperament: 직접 경험하고자 하는 열정.
- 통속성Benality: 책을 통해 세상을 인지함.
- 소시민들처럼 자기방어를 하지 못하는 순수/순박pure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
- 엠마의 순박함은 부르조아 사회의 치졸함과 만났을 때 배신당하고 희생된다.

엠마와의 대척점

- 쁘띠 부르주아 사회: (저질스런) 남자, 돈
- 엠마 주위의 소시민적 인물들

상상illusion으로만 구현되는 사랑

- 엠마는 레옹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레옹'을 사랑한다.

그녀는 레옹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마음껏 그려보는 즐거움을 위해 고독을 원했다. 그가 직접 눈앞에 보이면 그 명상의 쾌락이 흐트러지는 것이었다. 엠마는 그의 발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그러다가 막상 그가 앞에 오면 감동이 사라지면서 오로지 커다란 놀라움만이 남았다가 어느덧 그것도 슬픔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었다. (2부 5장, p.158-159)

- 로돌프와의 첫 정사장면에서 로돌프는 없고, 오직 엠마의 감각만 있다.

젊은 여자는 그의 어깨에 쓰러지듯 기대면서 천천히 말했다.

그녀의 옷자락이 남자의 우단 저고리에 찰싹 붙었다. 뒤로 젖힌 그녀의 흰 목덜미가 한숨으로 부풀어올랐다. 그러고는 아찔해진 그녀는 온통 눈물에 젖은 채 긴 전율과 함께 얼굴을 가리면서 몸을 내맡겼다.

저녁 어둠이 깔리고 있엇다. 옆으로 비낀 햇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들어 그녀는 눈이 부셨다. 그녀 주위의 여기저기, 나뭇잎들 속에, 혹은 땅 위에, 마치 벌새떼가 날아오르면서 깃털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빛의 반점들이 떨리고 있었다. 사방이 고요했다. 감미로운 그 무엇이 나무들에서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고 피가 몸속에서 젖의 강물처럼 순환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아주 멀리, 숲 저 너머, 다른 언덕 위에서, 분간하기 어려운 긴 외침 소리가, 꼬리를 길게 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는 마치 무슨 음악처럼 그녀의 흥분한 신경의 마지막 진동에 한데 뒤섞였다. 로돌프는 이빨사이에 여송연을 물고 두 개의 고삐 중 부러진 것을 주머니칼로 다듬고 있었다. (2부 9장, p.234)

- 엠마의 남자들은 엠마가 일루젼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매개에 불과하다.

열정 vs 합리성

-
배경: 합리주의와 계몽주의가 도래하는 시기.
- 자기가 믿는 것이 존재리얼리티를 얼마나 증명하는가?
- 약제사(오메) vs 신부(부르지니엥) : 잠이라는 메타포에 대립이 무화됨.
구체적인 삶에서 나온 믿음이 아닌 일종의 교육을 통한 허영의 믿음.
- 엠마는 삶의 리얼리티를 가진 인물. (상상적 현실)

(엠마의 어리석음은 환상illusion을 진짜로 받아들이는 열정이다. 하지만 소시민의 합리성이란 어리석음은 자기가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존재리얼리티를 증명해주지 못한다. 각각 과학주의와 중세의 종교관의 상징인 약제사와 신부는 시종일관 각을 세우다가 엠마의 시신을 지키다 결국 잠들어버리고, 심지어 자다 일어나 음식을 먹은 후 아무렇지 않게 화해도 한다. 그리고 다시 싸운다. 그런 믿음과 엠마의 리얼리티는 그 힘이 다르다. 플로베르는 이렇게 소시민의 합리성의 허구를 폭로한다.)

상상적 현실에서 가지는 엠마의 리얼리티

- 벤야민: '멈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꿈의 실현이다.'

벤야민의 크리스마스 선물 예화: 크리스마스날 나는 정말 행복했던, 기대감이 실현되고 그 안에 내가 원하는 선물을 이미 가졌다고 생각되는 그런 행복감은 들어가는 과정 속에였다. 양말 속으로 내 손이 점점 접근해 들어가고 있는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이미 그 선물을 가졌고, 실제로 닿아서 그 선물을 꺼내봤을 때 그 선물이 내가 원하지 않은 선물이었다 하더라도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 아도르노: '모든 것이 거짓인 세상에서는 진실이 바로 거짓이다.'

아도르노의 예술과 자본주의 사회: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을 이야기하는데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이 거짓이 되어버린 사회이기 때문에 진실을 얘기하는 예술에게 거짓이라고 이야기한다.

(엠마가 죽기전에 장님거지의 노래가 들리고, 엠마의 육체는 이미 기력을 모두 잃었지만 그 노랫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육체가 죽음의 지경에 이르렀을지언정, 엠마의 열정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게 엠마의 리얼리티이다.)


 
[북클럽 마무리]

1. 과연 누가 살아있느냐? 누가 어리석느냐?

이 질문은 매우 가치가 있다. 내가 믿는 것은 곧 나를 증명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결코 변하거나 타협될 수 없는 것이어야만 한다. 삶은 곧 전쟁이다. 하지만 약제사와 신부는 잠 앞에서 너무 쉽게 무화된다. 자기가 믿는 것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윤리성인데, 이 측면에서 엠마는 다른 소시민들과 달리 지극히 윤리적이다. 하지만, 형식의 순수성, 혹은 윤리성을 넘어서 그 내용을 봤을 때, 과연 그것까지 옹호할 수 있는가? 엠마의 모방된 욕망은 너무 헛된 허상이 아닌가?

2. 해피엔딩

이 소설을 과연 비극이라고 볼 수 있을까? 엠마의 상황에서, 도저히 현실에서는 그녀가 꿈꾸는 이상에 도달할 수 없고, 권태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관념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엠마는 그 실패가 드러났을 때 육체의 고통으로 드러난다. 이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역마살이다. 죽음만이 그녀를 해방시켜줄 수 있다. 그래서 심지어 그녀의 죽음에 도리어 안도가 들기도 한다. 게다가 죽음 직전이긴 하지만 샤를르의 사랑과 드디어 소통하게 되었으니, 엠마에게도 부부에게도 완전한 비극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굳이 해피엔딩이라고까지 극단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도...

3. 자기과잉

허위의 욕망 뿐만 아니라 또다른 문제는 엠마의 자기과잉에 있었다. 엠마에게 타자는 없다. 오직 대상만 있을 뿐. 이는 자기는 없고 타자, '자기에 대한 주인'이라는 타자만 있는 샤를르의 모습과도 대조된다.

4. 수동적

엠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과 다르다. 스칼렛이었으면 기요맹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 맥락에서 '욕망을 추구하다가 파멸하는 여성'으로 그린 끌로드 샤브롤 감독의 영화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기도 하다. 엠마는 생각보다 굉장히 수동적이고 유약하다.

5. 중세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엠마는 3천프랑 때문에 죽는다. 중세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옮겨가는 그 과정의 틈에서 엠마의 사랑은 결국 3천프랑 짜리였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랑을 쫓았지만, 결국 3천프랑의 대가로 죽음을 맞는다.


에디공(www.adzero.kr) 북클럽 모임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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