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작품 해설 - 김화영 향유/Book 2011.02.23 15:14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 귀스타브 플로베르,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00.


역자 작품해설 - 김화영 (불문학 교수)

* 이 색은 북클럽에서 나온 부연 설명입니다. 책의 내용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경: 플로베르의 첫 장편 [성 앙트완느의 유혹]에 대해, 친한 문우文友인 뒤 캉Maxim Du Camp과 부이예Lui Bouihet에게 낭만적 감수성 과잉이라는 비난을 받고 5년에 걸친 노력 끝에 완성함.

시점과 작품의 구도 변화
시점의 대칭적 변화: 우리→샤를르→엠마→샤를르→오메
설명의 변화: 외면→내면→외면

문학사적 위치: 사실주의 소설로 분류됨. (낭만적 사실주의라고 하는 이들도 있음.)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함께 현대를 여는 작품. ([악의 꽃] - 프랑스 현대시의 시조,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가 그로부터 발생됨.)

스타일: “플로베르의 문장은 버릴 것이 없다.”
(반면, 그는 작가수첩을 가지고 일하는 일소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 플로베르야말로 현대 소설에 나타난 최초의 비구상파.
- 스타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물들을 바라보는 절대적인 방식이다.
- 내용과 형식의 일체성에 대해 극단적으로 실천하려고 노력.

- 플로베르의 작품은 주로 작가의 감정을 배제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빨강머리 앤]으로 유명한 루시모드 몽고메리의 문체와 비교해 보면 그의 특징을 더 잘 알 수 있다. 인상파 화풍과 같은 묘사의 달인 몽고메리와 달리, 플로베르의 묘사는 작가가 설명하고자 하는 캐릭터, 혹은 사건의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3부 1장에 보면 '두 사람의 고독을 한층 더 오붓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꾸민 것처럼 방은 작았다.(p.338)'라고 설명되어 있는, 플로베르답지 않은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플로베르라면 응당, 고독이란 말을 직접 형용하지 않고, 방의 크기와 가구를 묘사하며 그들의 작위적인 고독을 드러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그의 사실주의적 묘사가 얼마나 함축적 의미를 내포하는지 반추할 수 있다. 이 플로베르답지 않은 문장은 오점일 수도 있겠고, 3부에서 엠마의 파멸을 그리는 동안 동시에 작가도 흥분해서 평정심을 잃은 걸 수도 있겠고, 아니면 엠마의 파국을 형식에도 담아가고자 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 백미로 꼽는 2부 8장의 농사공진회 연설장면은, 플로베르도 무척 공을 들였다고 한다.(p.200-215) 농민들에게 노동의식을 고취시키는 연설장면과 로돌프가 의도적으로 엠마를 유혹하려는 장면을 병치시킨 장면으로, 농민을을 노예로서 고착시키려는 정부의 감언이설과 로돌프의 유혹이 절묘하게 교차편집되며, 그 효과를 배가시킨다. 동시에, 농민들이 '입을 헤 벌린채' 이 연설을 집중해서 듣는 배경에 수레꾼이 가축을 몰아놓고 있는 것을 설명하며, 가축과 농민이 별반 다를 처지가 아니라는 점을 각성시킨다. 게다가 수레꾼들은 수말이 암말에게 달려드는 것을 막느라 애쓰고 있는데, 이는 또 영락없는 엠마와 로돌프의 모습이다.

- 3부 2장에서는 그 유명한 마차 장면으로 레옹과의 밀회를 마치고 돌아온 엠마에게 시아버지의 부고가 날아든다. 하지만, 엠마는 착하기만 한 남편 샤를르의 슬픔에 대한 공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밀회로 나른해 있는 엠마에 대해 샤를르는 그녀가 슬픔 때문에 그런 줄 알고 배려한다. 플로베르는 이렇게 밀회 다음에 시아버지의 죽음을 배치하여 오직 '자기'만 있는 엠마와 '자기'는 없는 샤를르를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나비와 쥐와 개양귀비꽃

그녀의 상념은 처음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마치 그레이 하운드 강아지가 들판에서 원을 그리며 뱅뱅 돌기도 하고, 노랑나비를 쫓아가며 짖어대기도 하고, 들쥐를 사냥하거나 혹은 보리밭 가의 개양귀비를 물어뜯기도 하듯이, 무작정 떠들기만 했다. 이윽고 생각이 조금씩 한곳에 머물게 되자 그녀는 잔디 위에 앉아 양산 끝으로 풀밭을 콕콕 찌르면서 마음속으로 되풀이 했다.

「맙소사, 내가 어쩌자고 결혼을 했던가?」(1부 7장)


 

나비, 쥐, 개양귀비꽃은 엠마가 만나는 남자들, 자작→레옹1→루돌프→레옹2를 상징한다. 우리 눈에 강아지는 목적없이 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때그때 눈앞의 목표에 따라 짖어대기도 하고 사냥하기도 하고 물어뜯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엠마에게 남는 것은 양산 끝으로 풀밭을 콕콕 찌르는 권태일 뿐. 프로베르는 이런 기법으로 소설 1부에서 보바리즘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동력을 설명해놓았다.

보바리즘: 고티에Jules de Gautier에 의하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기능이다. 저 너머의 다른 곳을 꿈꾸는 엠마는 낭만주의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다. 즉 이 작품은 [성 안트완느의 유혹]의 낭만적 감수성 과잉에 대한 각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플로베르는 “엠마 보바리는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선언했다. (이후 보게 될 미셸 트루니에와 김진영의 시각은 플로베르의 선언에 대해 이처럼 해석한 것과 그 관점이 다르다.)
 

돈의 숙명 - 엠마는 불행한 우연의 희생자

사실 엠마가 자살에 이르게 된 직접적 동기는 사랑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이었다. 그 여자가 치른 죄는 간음이 아니라 무절제한 낭비다... 과연 엠마는 그의 욕망 속에서 사치의 관능을 마음의 희열로, 습관의 우아함을 감정의 섬세함으로 혼동하고 있었다. (p.541)

-
이 해설에 대해서는 북클럽 때 의견이 나뉘었다. 상류층에 대한 선망으로 사치에 휩싸여 몰락의 직접 원인인 파산을 이끌어왔다며 김화영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직접적인 원인은 파산이 아니라 이를 통해 자기가 믿었던 사랑들이 허상임이 드러나며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절망을 느꼈기에 죽을 수 밖에 없었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두 번째 의견의 근거는 아래 본문이다.

(마지막으로 돈을 빌리러 갔다가 거절당하고 비소를 구하러 가며) 그녀는 자기를 이토록 끔찍한 상태에 몰아넣은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즉 그게 돈 문제였음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괴로운 것은 오로지 사랑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치 부상당하여 다 죽어가는 사람이 피가 흐르는 상처를 통해서 생명이 새나가는 것을 느끼듯이 그녀는 그 기억들을 통해서 자신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3부 8장)





에디공(www.adzero.kr) 북클럽 모임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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