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랑 캉테 - <클래스> 집단리뷰 향유/Movie 2011.01.22 01:14

1월 8일 ['08 칸 황금종려상] '벽 사이에서' 교실과 사회를 만나다 <클래스> 로랑 캉테 감독
 

 

<클래스>는 황금종려상을 받을만 했나

지난 8일 2011년 첫 주말의 명화 모임을 진행했다. 그 첫 작품은 2008년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로랑 캉테 감독의 <클래스>다. 영화는 프랑스의 한 교실을 배경으로 교사와 학생들의 갈등이라는 진부한 소재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어떻게 칸에서 만장일치로 수상할 수 있었을까?우리의 반응은 어떻게 이런 영화가 상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혹평과 로랑 캉테의 독자적인 지점이 있다는 호평으로 갈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좋은 내용은 담고 있을지 몰라도 영화라는 매체성(혹은 형식)을 거의 느끼지 못해서 남는 게 없다는 반응과 교실의 디테일한 모습들에서 ‘리얼리티’를 느꼈다는 반응이었다.


윤호: (누군가에게는 좋은 영화일 수 있겠지만) 어떻게 상을 탔는지 모르겠다. 쥔스킨트 책에서 책을 읽고 나면 다 까먹어서 왜 읽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영화도 마찬가지인데, 이 영화가 그런 것 같다. 하나도 남는 게 없다. 그래도 어떤 작품은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오래 지나도 이미지는 남는 게 있다. 영화는 오직 영화로만 말할 수 있는 걸 말해야 하는데, 이 영화는 보고서로 만들어도 될 뻔한 영화인 것 같다. 예술적 가치를 못 느꼈다. 반면 <엘리펀트> 같은 경우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는 이미지가 있었다.


다나: 저의 경우는, 이 영화가 생경하지만 현실성 있어서 나름 충격이었다. 학생들의 디테일이 뛰어나다. 아이들이 속닥거리는 거, 맨 뒤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들, 교사보다 한 마디라도 더 해서 이기려는 모습들. 예고에서 5년 동안 수업을 하다 보니까, 이 새끼들은 다 똑같다는 점을 느낀다.


재원: 교육 관련된 영화를 재밌게 풀어가려면, 여러 학생이 있고, 그 중 한명이 유독 문제적이어서, 교사가 그 한 명과 씨름하며 그 아이의 사정과 마음을 알아가면서 치유해가는 설정을 다뤄야 할 텐데, 예컨대 <굿윌헌팅>, 이 영화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클래스>는 부모를 만나지만 아이의 사정을 알아가는 게 아니라, 더 막히는 것을 보여준다. 로케이션에도 답답함을 강화시키는데, 처음 장면만 밖의 풍경을 잠시 다룰 뿐, 계속 교실을 잡은 것은 의도적이다.


윤호: 현실과 완전히 부합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 형식이 효과적이었는가? 며칠만 지나도 다 까먹었을 것 같다. 차라리 신문 기사로 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숙정: 이런 사소한 일로는 기사로도 안 실릴 것 같다.


준용: 목은 따야 기사화가 될 거다.(웃음)


다나: 신문에서는 너무 짧게 나오잖아요. 이 영화는 교육 현실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 완벽하게 구성하여서, 멀리서 잘 관찰한 것 같다. 정말 이유 없이 말꼬리 잡는 행위를 실제로 많이 한다. 가령 ‘잔상’에 대해서 얘기하면 애들은 "뭐 진상?" 그러면서 꺄르르 웃는다. 애들이 한 덩어리 집단이 돼서 선생님을 공격하는 것도 비슷하다.


숙정: 체벌이 사라진 학교의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


준용: 갑작스레 퍽하고 자막 올라갈 때 다르덴 형제 같은 느낌이다. 프랑스에서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은데, 진지하게 영화를 만들면, 이야기의 극화의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느낌이다. 좋은 음식이 입에는 쓴 법인데, 씹다 보면 감각적 음식이 주지 못하는 것을 주는 것이 있다. 이 영화도 지루했지만, 선생님의 상황에서 몰입하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 교사와 학생, 그리고 소통에 관한 생각할 지점들이 있다. 지루하면서도 흥미로웠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관찰자의 위치에서 관조하려고 하고,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 것 같다. 혼자 봤으면 안 봤을 가능성이 크지만, 같이 봐서 볼 수 있었다.


학교를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


우리는 이 영화가 부정적 의미에서 지루하거나 긍정적 의미에서 답답했다. 그리고 호불호의 중심에는 ‘카메라의 시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었다. 그 평가에 따라 영화는 굳이 영화로 만들 필요도 없고 촬영의 묘미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 CCTV와 같은 것이 되는가 하면, 영화라는 매체의 고유한 체험이 가능한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소선: 교육이 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를 보니까, 생각할 지점이 있다. 하지만 영화가 재미없다. 카메라가 움직이질 않는다. CCTV 같다. 앞으로도 뒤로도 안 가고, 그 점이 힘들었다.


재원: 시종일관 답답했다. 풀기 힘든 숙제를 제시하는 느낌이다. 카메라의 경우, 모든 장면을 핸드헬드로 찍어서 시종일관 흔들리는가 하면, 거리는 마치 선을 그어놓은 듯 이입도 방관도 할 수 없는 지점에 놓여 있다. 이 어중간한 지점에서 핸드헬드의 울렁거리는 느낌이 좋았다.


윤호: 여기는 움직이긴 하잖아요. 가령 허우 샤오시엔이나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경우 카메라를 완전히 고정해서, 대상을 정물처럼 다루거든요. 그것이 시간성을 보여주고 굉장히 파워가 있는데, 그 영화들과 비교해 봤으면 좋겠다. 나는 형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준용: 그 파워가 사람을 죽인다.(웃음)


다나: 완벽하게 시나리오를 짜서, 공간을 만들어 놓고, 관조적으로 보는 카메라가 좋았고, 교사가 알고 있지만 피하려 하는 것을 그대로 가져온 부분이 좋았다.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분위기나 촬영이 궁금했다.


재원: 카메라의 관조적 시선에 대해서 동의하지만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만약 심하게 카메라가 흔들렸다면 너무 극화되는 느낌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반듯하게 찍었으면 남의 일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에 아이들과 선생의 미묘한 감정싸움이 실려 있는 것 같다. 이런 카메라의 시선은 강력한 느낌이 들지 않지만 의도적인 것 같다.


학교 교육을 말하다


영화에 대한 평가를 떠나 우리는 <클래스>의 중심 주제인 교육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는 점수제를 도입하여 제멋대로인 아이들을 통제하고 체벌해서 규율을 지키려 하는 가운데 교사 마랭은 가급적 민주적으로 학생들과 대화하고 수업을 이끌어 가려고 한다. 하지만 마랭은 학생들에게 '창녀', '학습능력이 원래 제한된 학생'처럼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면서 그 한계를 보여준다. 


재원: 로랑 캉테 감독은 결론을 하지 않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마지막도 텅 빈 교실로 끝난다. 교사들끼리 체벌을 얘기하면서, 운전면허 방식으로 점수화해서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하는데, 교사들도 토론하면서 그것의 부작용 때문에 난관에 부닥친다. 대부분의 교사가 원칙에 맞게 아이들을 재단하여 위신을 세우려 한다면, 마랭은 민주적으로 운영의 묘를 살리려고 한다. 하지만 전혀 아이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교사는 징계위원회에서 퇴학 위기에 처한 학생을 보호하려고 했는데, 학생 대표로 참석했던 학생에 의해 왜곡되어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조직을 민주적으로 끌고 가려 했지만,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하면서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창녀’라는 말을 하게 된다. 교사 스스로도 규칙이라는 것이 부작용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민주적으로 한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닌 난관에 부닥친다. 민주적 교사가 아름다운 결론을 내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 영화는 질문하게 만든다.


소선: 교육은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마랭은 시스템 안에서는 다른 교사보다 민주적이지만 결국 체제 내에 포섭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민주적인 것과 체벌을 사용하는 것이 도끼니 개끼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준용: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가? 그래서 뭘 해도 안 된다는 거야?(웃음) 교육의 가장 큰 덕목이 인내라고 한다. 교사가 학생에게 굉장히 인내심을 가지고 경청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영화에서도 보인다. 영화에서는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근본적 교육 태도를 통해 변화를 일궈낸 경우도 보여준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처럼 격차가 큰 것은 아니지만, 선생의 관심을 느끼며 변화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변화는 현실적인 변화의 모습이다. 모든 학생이 변했다고 그럴 때, 극적인 감동을 느낄 텐데,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규범과 규율을 중히 여기는 선생과 민주적이고 상호존중과 소통을 노력하는 교사 중 분명히 후자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이 영화가 지혜롭고 정치적인 것은 후자의 노력하는 선생의 실패와 좌절을 보여주고 있다. 선생이 불완전하다는 의미에서 ‘인간적’이다. 학생에게 ‘창녀’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한 것이 맞다. 하지만 마랭은 이 부분에 대해서 변명하고 빠져나가려는 태도가 보였다. 민주적인 것을 지향하는 교사조차도 위기상황에서는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인간적 모습을 보여준다.


소선: 저도 다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사 입장에서 네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준용: 그것이 비극이다.


숙정: 마지막에 한 아이가 배운 것이 없다고 했을 때, 통쾌했다. 한 방 먹인 기분이다. 수업 내내 이름도 안 불리고 대사 한마디도 없다가, 마지막에 ‘배운 게 없어요.’라고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재원: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면, 아이의 사정을 보게 된다. 하지만 집에까지 찾아가지는 못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체적으로 접근하지는 못한다. 교실에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해결책을 모색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문제는 교실 내부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발생한다. 절대로 총체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시작부터 포기다. 그것이 로케이션을 교실에만 고정시킨 것에서 잘 표현해준다. 따라서 문제 해결은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가 해결 안 된다. 그래서 당연히 퇴학을 시키는 거다. 그 퇴학은 징계위원회라는 합리적인 방식을 빙자하여 진행하지만 책임회피의 수단이다.


다나: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는 것 같다.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당연히 맞지만 실제로는 안 된다. 안에서는 할 수 있는 것-부모님과 상담하는 것, 아이들을 회의에 동참시키는 것-을 다한다. 하지만 교사들은 어차피 안 되는 것이라는 비관을 깔고 들어가는 것 같다.


준용: 마랭은 입체적 인물이다. 긍정적 지점과 어두운 지점이 같이 있다. 학생대표를 앞에 두고, 퇴학대상의 학생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 그 아이는 거기까지 밖에 안 되는 애라는 말을 학생대표 앞에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교사는 이상주의자였다. 이것은 약간의 변화를 이뤄낼 수 있지만, 완벽한 존재가 있을 수 없으므로 예견된 실패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소선: 노력하는 선생님이었지만, 현실의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최고는 아니다.


이야기를 한 시간 남짓 진행하고 나서 우리는 <클래스>의 장단을 더욱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여전히 ‘<클래스>가 영화적인가’라는 점에서는 합의되지 않았지만,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첨예한 갈등과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각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던져준 영화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영화는 정치적이지만 당파적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맨 나중에야 이야기됐지만, 영화는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클래스>는 그렇게 아무런 감정선도 제시하지 않은 채, 알 수 없는 미궁에 빠뜨려놓은 채, 무책임한 듯 관객에게 책임을 전가한 채, 자막이 올라가는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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