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리쌍 사태에서 드러난 ‘을질’ 논란의 이면 향유/Media 2016.08.01 12:54

재작년 땅콩 회항 사건으로 갑질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그 전후로도 우리 사회의 특권층이라고 일컬어지는 갑들의 횡포는 계속해 왔다. 직장, 학교, 종교 가릴 것 없이 권리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갑은 권력의 비대칭 관계에 있는 을에게 부당한 요구를 해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갑질과 더불어 ‘을질’이라는 새로운 조어가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여기서 ‘을질’은 갑질과 마찬가지로 ‘을’ 뒤에 좋지 않은 행위에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질’을 붙인 신조어로, 을이 권리관계에서는 약자이지만 실제로는 갑처럼 굴며 갑에게 횡포를 부리는 부당행위를 뜻한다. 


최근 을질 논란은 힙합 듀오 리쌍의 건물에 세 들어 장사하던 서윤수 씨(곱창집 ‘우장창창’ 사장)가 강제집행에 저항하는 일에서 제기됐다. 관련 기사 포털 댓글창에는 “영구 임대했냐 도대체 몇 년이 흘렀는데 안 나가고 버티냐. 완전 슈퍼 을질 쩌네”(kimh****)”, “내 건물 내 맘대로 한다는데 뭐가 문제인가?”(hyun****) 등 세입자에 대한 비판적 댓글이 지배적이었다. 한 포털 기사에 달린 댓글 905개를 모두 확인해본 결과, 840개의 댓글이 리쌍을 옹호하며 서 씨를 힐난하는 댓글이었고, 60개 정도가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문제 삼는 글이었다. 다른 포털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마찬가지였다. 9할 이상의 여론이 세입자가 약자 코스프레를 하며 을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을질 논란에서 누리꾼의 버튼이 눌린 지점


누리꾼들이 시쳇말로 버튼이 눌린(‘공분을 사다’는 뜻의 인터넷 속어) 이유는 건물주인 리쌍이 계약 기간을 충분히 보장해 주고 법대로 계약 해지 통보를 했는데도 서 씨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리쌍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해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데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장창창 강제집행 현장(사진=맘상모)


2010년 11월 곱창집 우장창창을 개업한 서 씨는 2012년 5월 건물주가 리쌍으로 바뀐 걸 알게 된다. 당시 리쌍은 본인의 가게를 내기 위해 2012년 9월 말일자로 계약을 해지하겠다며 보상금 명목으로 1억 원을 제시한다. 개업 2년 만에 권리금 2억7500만 원을 포함하여 투자금 4억3000만 원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된 서 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약 연장을 주장한다. 갈등 끝에 2013년 9월에 재계약을 하게 된다. 내용은 서 씨가 1층 가게를 비우고 같은 건물 지하로 내려가는 것과 리쌍이 1억8000만 원을 보전해주고 1층 주차장을 서 씨가 야간에 활용할 수 있게 협조한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주차장 활용 문제로 다시 갈등이 일어나면서 리쌍은 2015년 8월에 다시 한 번 계약을 해지한다. 그리고 2016년 7월 강제집행을 이어간다. 


누리꾼들은 이 과정에서 어쨌든 서 씨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장사를 해왔다는 데 주목한다. 해당 건물이 본인 것이 아닌데 5년을 넘기고도 남의 건물에서 장사를 하려는 것은 세입자의 진상이며 을의 횡포라는 것이다. 게다가 누리꾼들은 법적 의무가 없는 보상금 1억8000만 원을 세입자에게 보전해준 리쌍을 높게 사며 그를 ‘천사 건물주’로까지 평가한다. 반면에 서 씨는 법 위에서 부당한 이익을 얻어내려는 슈퍼 을로 취급된다.


건물주를 옹호하는 을들의 정체


여기서, 건물을 매입하자마자 2년밖에 장사하지 않은 세입자를 내쫓으려고 했던 건물주 리쌍의 행위는 부당한 것 아니냐는, 4억3000만 원을 투자한 세입자를 지하로 내쫓고 1억8000만 원을 보전해 준 것은 약탈에 가까운 것 아니냐는, 재계약 후 2년 만에 또다시 강제집행까지 감행한 리쌍이 너무한 건 아니냐는 주장은 ‘법대로’라는 명분 앞에 쉽사리 무시되고 법을 따르지 않는 세입자는 을질로 비난받는다. 


사실 ‘법대로’라는 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강자의 언어에 속한다. 게다가 을질이라는 말은 다분히 갑의 위치에 있는 자가 약자인 을을 무시하거나 폄훼할 때 쓰게 되는 언어이다. 하지만 이러한 강자의 언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약자의 입을  통해 발화되고 있다. “모든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라는 맑스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증명하듯이, 지배적 여론은 갑의 위치에 있는 건물주 리쌍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이다. 상당수의 국민이 건물주가 되길 꿈꾸는 현실에서 누리꾼들이 건물주인 리쌍에게 동일시되어 약자인 세입자의 저항을 을질로 비난하는 것은 이해 못할 일도 아닌듯 하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부가 사회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으로 받아들여진 현실을 고려할 때,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들이 금수저인 건물주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건 아무래도 동의하기 어렵다. 포털 정보에 따르면 앞서 905개의 댓글을 단 누리꾼 상당수는 20~30대 청년들(20대 37%, 30대 41%)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들은 수저 계급론에 가장 공감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논리에  따르면 리쌍을 편든 이들이 건물주가 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런데도 대중이 리쌍 편을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건물주가 될 수 없는 현실을 잘 알고 있는데도 건물주에게 공감하는 현상은 맑스가 말한 허위 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대중은 언젠가는 건물주가 될 수 있다는 헛된 희망 때문에 건물주에게 감정 이입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을질을 주장하는 이들이 그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댓글을 다는 알바 정도로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을질 논란을 넘어 미래를 향한 위대한 상상력으로


"아무리 ‘노오오력’을 해도 건물주가 될 수 없는 이들이 처지가 같을 수 밖에 없는 세입자에게 ‘을질’이라는 기괴한 딱지를 붙이는 현실은, 약자가 자기 이해를 배신하면서까지 강자의 편을 들고 있다는 점에서 ‘대립된 두 규정의 통일’이라는 헤겔의 변증법 논리의 증명처럼 보인다.


슬라보예 지젝은 그의 책 <까다로운 주체>에서 이러한 모순적 현실이 지배 관념으로 굳어지는 이데올로기의 작동 원리를 변증법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이데올로기의 성공은 ‘피지배자 다수의 본래적 열망’과 ‘지배 세력의 이익을 표현하는 특수한 내용‘사이의 긴장에 있다고  진단한다. 가령 성공적인 이데올로기의 대표 사례는 기독교이다. 기독교는 ‘진리는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다’는 피억압자들의 유토피아적 갈망을, 기존의 지배관계와 양립 가능한 것으로 재표명함으로써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됐다. 이런 식이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예수님은 고통받는 우리 모두(가난한 자든 부한 자든 차별없이)를 위해 오셨다. 부자라고 비난하지말고 가난하다고 억울해 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자. 우린 주님 안에 하나이다.' 을질 논란에 이 이데올로기 작동 원리를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돈 걱정 없는, 인간다운 삶’이라는 대중의 유토피아적 갈망을, 자기 자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세입자를 내쫓는 건물주라는 갑의 위치로 통합시킴으로써 을질이라는 발언이 지배적인 여론이 됐다고 말이다. 


사실 대중의 이러한 본래적 열망은 얼마 전 스위스에서 국민투표로 시도된 기본소득제의 아이디어와 맞닿아 있다.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일정 수입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는 국민 모두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제안된 제도이다. 비록 이 제안은 다수의 반대로 부결됐지만 대중의 본래적 열망을 보편적 제도로 담아내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시도였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을질 논란은 미래의 상상력을 담아낼 그릇의 부재로 인해 생긴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정재원 에디공 프로그래머, <복음과 상황> 16년 8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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