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프로듀스 101 - 심사위원 부재가 낳은 잔인함 향유/Media 2016.04.01 14:00



‘당신의 한 표가 소녀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국민 걸그룹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Mnet에서 방송 중인 <프로듀스 101> 홈페이지 적힌 문구이다. 얼핏 보기에 시청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상투적인 문장처럼 보이지만, 이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시청자들은 저 말이 결코 과장된 멘트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유는 선정 방식 때문이다. 46개의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101명의 연습생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은 100% 국민 투표 방식으로 최종 11명의 소녀를 선정, 걸 그룹으로 데뷔하여 8개월간 활동할 기회를 제공한다. 특이한 점은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프로듀스 101>에는 참가자들을 지도하고 평가할 심사위원이나 멘토가 부재한다는 점이다. ‘국민 프로듀서님’으로 호출된 시청자들이 평가자의 자리를 대신한다. 시청자들의 투표가 연습생들의 당락을 전적으로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차별화는 이전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았던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살펴볼 지점이 있다.


‘실력’보다 먼저는 ‘센터’ 포지션


우선 기존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심사위원들이 모든 참가자의 노래와 춤 솜씨를 직접 보고 평가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모든 참여자가 방송을 타는 것은 아니지만, 평가를 받을 기회는 공정하게 주어졌다. 반면 <프로듀스 101>은 태생적으로 모든 연습생이 평가 받을 기회를 얻기 힘든 구조이다.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연습생들이 90분으로 제한된 방송 시간에 골고루 노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평가 과제였던 ‘Pick me’ 무대는 이러한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3분짜리 무대에 101명의 연습생이 모두 올라선다고 했을 때, 차등 없이 모두가 동일하게 브라운관에 출현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결국 소녀들은 사전 평가를 통해 무대의 가장 중앙에 있는 A등급부터 무대 아래에서 다른 연습생들을 백업하는 F등급까지 분류됐고, 그 결과 A등급 중 센터를 맡은 최유정 연습생의 인지도는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그에 반해 F등급 연습생들은 목청껏 ‘Pick me’를 외치며 카메라의 시선을 구애했지만 예정된 순서대로 이름도 빛도 없이 방출의 운명을 맞게 됐다.


이러한 구조에서 참가 연습생들의 모든 관심은 ‘실력’보다는 ‘카메라 노출 빈도’에 맞춰진다. 이 프로그램에서 ‘센터’라는 말이 반복하여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도 자신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파트에 욕심을 내는 참가자들 탓에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호흡을 맞추기도 전에 무대의 위치를 놓고 다투지는 않았다. 파트만 고르게 분배 된다면 심사위원의 평가를 받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눈에 들어야 하는 <프로듀스 101> 참가자들에게는 노출에 유리한 센터 위치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실력은 자리를 차지하고 난 뒤의 문제이다.


변덕스러운 대중과 우는 소녀들


그렇다면 센터를 차지한 소녀들은 ‘실력’을 제대로 발휘만 한다면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일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기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은 참가자들의 합격과 탈락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따라서 참가자들은 심사위원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추어 자신의 실력을 보여야 했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참가자는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불합격이라는 쓴잔을 마셔야 했다. 결국 참가자들이 주목해야 할 건 심사위원의 ‘판단 기준’에 부합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있다. 가령 박진영의 합격을 얻고 싶으면 ‘말하듯 노래하는 자연스러움’을 보여주면 되었고, 양현석의 선택을 받고 싶으면 ‘자신만의 개성 있는 끼’를 발휘하면 됐다. 하지만 <프로듀스 101>에서 그 기준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심사위원을 대신한 국민 프로듀서는 판단 기준이 수시로 변하는 익명의 주체들이고, 제작진의 편집 방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정보력이 부재한 점에서 무기력한 주체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중적 한계를 안고 있는 국민 프로듀서의 직접적인 평가를 받아야 하는 참가자들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언제 어떻게 어느 대목에서 변덕스러운 대중의 눈밖에 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격언을 마음에 새기고 튀는 행동을 삼가는 것이 최선의 방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는 않다. 제작진은 그저 튀지 않는 정도의 참가자로 머무는 걸을 두고 보지 않았다. 소녀들에게 몰래카메라를 들이댄 제작진은 무거운 생수를 옮기는 제작진을 돕는지, PD가 실수로 고장 낸 카메라를 대신 변상하는 배려심이 있는지, 바닥에 쏟아져 있는 콜라를 스스로 치우는 이타심은 있는지를 시험했다.


이쯤 되면 <프로듀스 101>에 출연한 연습생들이 왜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지 알 수 있다. 파놉티콘 같은 익명의 주체들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수시로 평가를 당하는 소녀들은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몸무게를 잴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농담할 때도, 센터 자리를 얻지 못해 기분이 상해 있을 때도 악마의 편집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압박을 견디며 경쟁해야 하는 그들은 불평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도 없는 건 물론이고, 랩을 하더라도 ‘디스 없는 랩’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렇게 억눌린 그들의 감정은 승리라는 기쁨의 자극이 들어올 때도, 탈락이라는 슬픔의 자극이 들어올 때도 오로지 눈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자동반사 인형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라도 그들은 안도감을 느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프로듀스 101> 참가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 노출에 대한 집착,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없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심사위원이 부재하고 100% 국민 투표 방식으로 진행되는 <프로듀스 101> 시스템은 그들을 더욱 가혹한 형태의 경쟁으로 내몬 것은 사실인 거 같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투표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재원 에디공 프로그래머, <복음과 상황> 16년 4월호에 게재.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 PREV |  1  |  ···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  |  223  |  NEXT >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