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소라넷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길 향유/Media 2016.02.05 22:44

‘서울 왕십리 골뱅이 여친.’ 대표적인 불법 음란물 사이트인 소라넷에 올라온 게시물 제목이다. 무의미한 말의 나열처럼 보이는 이 제목은 지난해 말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위험한 초대남, 소라넷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편(이하 <그알>)을 통해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주었다. 여기서 골뱅이는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여성을 가리킨다. 소라넷 이용자들은 만취 상태의 여성을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을 하고, 게시판에 글을 올려 함께 강간에 참여할 ‘초대남’을 모집하는 행각을 벌인다. 1990년대 말에 만들어져 16년 동안 그 명맥을 유지해 온 소라넷은 이렇듯 골뱅이, 초대남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강간 모의 글만 하루 평균 3건이 올라오는 곳이다.(12월에 들어서는 소라넷 폐쇄 청원 사이트의 신고와 강신명 경찰청장의 지시에 따른 대대적인 단속에 의해서 그러한 게시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지하철, 버스, 공공 화장실 등에서 몰래 촬영한 여성들의 사진, 과거에 사귀다가 헤어진 여자친구와의 성행위 동영상을 게시하는 ‘리벤지 포르노’ 등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불법 게시물들이 넘쳐난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불법이다. 만취한 여성을 성폭행한 것은 형법 제297조의 강간죄에 해당하며, 도촬 사진을 올리거나 그것을 배포하는 행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에 해당하는 죄로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소라넷은 범죄에 가까운 행동을 하면 할수록 고수로 취급받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탈 행위를 하는 자는 영웅으로 대접받는 뒤집힌 세계이다. 쾌락을 얻기 위해 여성을 대상화하고 더 나아가 흉악 범죄까지 자행하는 소라넷은 괴물들이 서식하는 문제적 공간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단지 예외적인 사람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백만 명 회원의 수가 결코 적지 않다. 그리고 요즘 방송에서 ‘야동’(야한 동영상)이라고 순화되어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음란 동영상 역시 상당수가 일반인이 찍힌 동영상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우리 안의 소라넷’ 따위의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문제의 심각성과 별개로 공중파에 출연하는 연예인을 비롯해 다수의 사람들이 불법적인 컨텐츠를 즐기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잘잘못을 떠나 욕망과 관련한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조금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법 위반이라는 도착적 쾌락


인간의 욕망은 짓궂게도 ‘~하지 말라’라는 금기의 명령에서 생겨난다. 이는 사도 바울이 율법과 죄의 문제로 고민하는 가운데 제공한 중요한 통찰이기도 하다. 그는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로마서 7장 7절)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자신 안에 탐심이 있어서 그 잘못된 욕망을 억누르는 기제로서 율법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탐내지 말라’라는 율법이 오히려 욕망을 부추기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어른들이 보는 비디오는 보지 말라고 아이에게 말하는 순간 그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던 아이의 마음에 성인 비디오를 보고 싶은 욕망이 불현듯 올라오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렇듯 법과 (법 위반의) 욕망은 상호 보충적이다. ‘~하지 말라’라는 금기의 명령은 그것 자체의 고유한 가치와 상관없이, 은밀하게 ‘~하라’라는 명령으로 도착(reverse)되어 우리를 법 위반으로 이끈다. 





이러한 욕망의 관점에서 소라넷 이용자를 본다면 그들은 ‘여성을 도구화해서는 안 된다’, ‘화장실 몰카를 찍어서는 안 된다’, ‘강간 모의를 해서는 안 된다’ 등의 명령을 위반하는 데서 도착적 쾌락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들은 이러한 쾌락에서 죄책감을 느낀다. <그알>에 출연한 야노라는 소라넷 이용자가 “잘못했다고 죄책감 느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솔직히 말해도 되냐고 물으면서 “또 (초대가) 있으면 갈 거예요. 가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이때 그가  느끼는 쾌락은 인간이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죄책감으로 반감되지 않는다.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는 한에서만 그는 쾌락을 누리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사악한 행동을 일삼는 자신을 응징하는 데서 향유를 얻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라넷 이용자들에게 ‘도촬하지 말라’, ‘강간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범법행위라는 사실을 모르는 미개인이라서 야만적 행위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문명인이기 때문에 범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고 있다. ‘~하지 말라’라는 명령은 그들의 쾌락을 지탱하는 뿌리이기에 명령을 위반하는 정도가 심할수록 그들은 더욱 열광한다. 


괴물이라고 가정된 그들


물론 그들의 기상천외한 범법행위는 단지  법 위반이라는 도착적 쾌락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들의 과도함을 이해하기 위해선, 범행에 가담하고 있는 핵심 당사자가 소라넷 이용자들을 미개한 자들로 타자화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알>에 출연한 또 다른 소라넷 이용자인 B씨는 “거기 모인 사람들은 그걸 (‘골뱅이’, ‘초대남’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강간을) 강간으로 생각 안 한다”라고 지적한다. 야노 또한 동일한 인식을 보여주는데, 그는 “거기 있는 회원들끼리는 범죄라고 느끼지 않는데, 범죄가 될 만한 거는 분명히 있다”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소라넷 이용자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자신의 행동이 위법한지 알면서도 도착적 쾌락을 얻기 위해 욕망의 노예가 된 자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강간을 강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괴물 같은 자들이다. 물론 후자는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가상적 인물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소라넷 이용자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골뱅이는 강간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들 모두는 앞서 야노나 이용자 B씨와 마찬가지로, ‘나는 강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소라넷에 있는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테니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괴물로 부르는 그들은 이용자 B씨가 주장하듯 “분명 존재하고 이 사회에서 그냥 지나다니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괴물이라고  가정된 주체’의 위상를 갖는다. 


소라넷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법의 공백 속에 살아간다고 가정된 그들에 대한 우리의 대처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서버를 뒀지만 도무지 행적을 찾을 수 없는 소라넷의 운영자들처럼 그 실상을 마주할 수 없는 자들이기에 그들에 대한  뾰족한 대응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아무리 ‘강간하지 말라’라고 외친들 현존하지 않는 그들에게 우리의 말은 다다르지 못한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괴물이 된 그들이 살아가는 서식지를 파괴하는 데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파괴는 우리의 음란한 욕망을 타자화하지 않고 정직하게 직면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정재원 에디공 프로그래머, <복음과 상황> 162월호에 게재.


  • 이기쇼 | 2016.03.25 18:51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결국 개인이 할 수 있는 활동은 화살을 본인에게 돌리는 것이군요.

    • 에디공 | 2016.03.28 10:39 신고 | PERMALINK | EDIT/DEL

      문제에 접근하는 출발선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읽어주시면 좋을 거 같네요.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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