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렛미인의 세계 향유/Media 2015.09.26 00:03


'거대잇몸녀, 노안녀, 처진 뱃살녀, 초고도 비만녀, 항아리 몸매녀 등등…...' 


듣기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000녀’ 시리즈는 성형수술로 외모를 바꿔 주는 메이크오버 프로그램 <렛미인> 출연자들의 별칭이다. TVN에서 방영 중인 <렛미인>은 외모 콤플렉스를 겪고 있는 두 명의 여성 출연자가 나와 누가 더 성형이 절실한 상황인지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경쟁에서 발탁된 승자는 무료 성형수술을 받고 합숙소에서 재활과 다이어트에 임한다. 이때 경쟁은 여타 서바이벌 프로그램처럼 자신의 장점과 매력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단점과 치부를 공개하고 증명하며 이루어진다. 


프로그램의 포맷에 따른 당연한 결과겠지만, <렛미인>은 성형수술을 조장하고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 단체들이 이 방송은 한 시간짜리 성형 광고라며 방송 금지 가처분까지 신청한 상태다. 하지만 <렛미인>은 이런 반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논란을 넘어 감동'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이번 시즌에는 방영 채널을 확장하였다. 게다가 타방송국에서도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논란은 확대되고 있다. 


'외모지상주의를 반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렛미인>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잘못된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지난 1월에 실시된 한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78.2%가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에 대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를 보여준다면서 부정적으로 답했다. 방송인 유병재가 <렛미인>을 풍자하면서  "예뻐지고 싶다→성형수술을 한다, 가족의 폭언→성형수술을 한다, 부모의 아동학대→성형수술을 한다…"라는 글을 SNS에 올렸을 때도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했다. <렛미인>의 제작진조차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걸맞게 성형을 해 주면서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깨워라'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출연자의 자신감 회복을 목표로 삼는다. <렛미인>이 부추기는 성형 수술과 외모지상주의는 단지 사람들의 의식을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대중은 외모지상주의가 잘못됐다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모에 집착하는 물신주의적 부인否認의 양상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열의 구조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상 16장 7절)라는 말씀을 두고 신자들끼리 나누는 농담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들은 이 말씀을 철저히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며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비튼다.  "그래,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고 계셔. 하지만 성경 말씀에도 나와 있듯이 사람들은 외모를 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외모를 가꾸어야 해." 여기서 마음의 중심을 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외모를 본다고 가정된 상상적 타자 앞에서 간단히 무효화된다. 우리는 외모지상주의가 문제이고 하나님은 내면을 본다는 진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진실에 대한 믿음은 갖지 못한다. 


'추녀를 위한 세계는 없다'


결국 외부를 향하지 못한 믿음은 내 안에서 머물며 맴돌게 된다. 이는 프로이트가 나르시시즘이라고 정의한 상태의 다름 아니다. 나르시스트의 세계는 외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와 나의 추한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나의 추악한 이미지를 이상적 이미지로 바꾸는 일뿐이다. 이때 구원자로 등장하는 것이  '렛미인 닥터스'이다. 의느님(의사+하느님)으로 불리는 그들의 도움만 있다면 우리는 내면을 보는 신 혹은 외모지상주의가 타파된 사회가 없어도 홀로 설 수 있다. 외모의 변화로 얻게 된 자신감 덕분에 우리에게 닥친 모든 문제(실업, 가정불화, 중독 문제 등)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렛미인> 서사구조는 동명의 영화 <렛 미 인>의 패러디로 볼 수 있다. 영화는 사람의 피를 먹고 살아야 하는 흡혈귀 소녀 이엘리가 왕따를 당하던 인간 소년 오스칼에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가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건, 인간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흡혈귀 소녀가 한 소년과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몸을 간신히 숨길 수 있는 박스 공간을 얻었다는 데 있다. 적어도 이엘리는 괴물에서 사람이 되는 변화의 과정이 없이 그랬다. 그렇다면 메이크오버 프로그램 <렛미인>은 어떠한가. 여기서 '렛미인'(let me in)은 'let美人'으로 전치된다. 괴물 취급받는 여성 출연자는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상대를 찾지 못한 채, 외부와 단절되어 자신의 외모를 바꾸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렛미인>이 단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문제적 프로그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받아줄 외부 세계가 붕괴된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징후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외부 세계의 붕괴란 규범이나 법과 같은 상징적 질서의 파괴를 의미한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예의가 무시된 세계에서는 남들과 다른 외모를 지닌 자들이 설 곳이 없다. 추녀를 위한 세계는 없는 것이다. 


이때 상징적 세계를 대체하는 것이 상상적 세계이다. 이 세계에서는 이미지의 우열만이 존재할 뿐, 법과 규칙과 같은 질서는 무시된다. 가령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상상적 해법은 '자신감'이지, 사회의 변화가 아니다.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이 외모를 따지든 따지지 않든 상관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들 세계에서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자신감 부족으로 인한 열등감의 표현일 뿐이다. 여기서 <렛미인>이 무시하는 것은 외모가 부족해도 공격받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세계에 대한 소망이다. 상상적 세계에서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져야만 당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질서가 복원된 상징적 세계에서는 외모와 상관없이 당당할 수 있다. 어느 세계가 더 행복한 곳인지는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렛미인>은 방송 말미에 성형 수술 후 달라진 참가자들의 삶을 담아낸다. 미모와 자신감을 얻은 그들은 정규직으로 직장을 구했고,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했다. 어떤 출연자는 쇼핑몰 대표가 되기도하고 심지어 영화배우로 캐스팅되어 인생역전의 드라마를 계속 써나가고 있다. 언뜻 보기엔 그들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있고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극적인 변화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그들은 영원한 승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괴물에서 미인으로 바뀐 그들의 기적 같은 변화에 호들갑을 떨며 놀라워하겠지만, 언제고 성형수술로 달라진 외모에 대해 '성형 괴물'이라는 새로운 낙인이 찍힐지 모를 일이다. 논란을 넘어 감동을 주겠다는 <렛미인>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올 날이 머지않았다. 



정재원 에디공 프로그래머, <복음과 상황> 15년 10월호에 게재.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 PREV |  1  |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  |  16  |  NEXT >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