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슈가보이 백종원이 씁쓸한 이유 향유/Media 2015.08.21 17:41



나는 백종원의 팬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설탕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백'설탕, 전국 팔도의 음식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한식대첩>의 '백'과사전, 요리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집밥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는 <집밥 백선생>의 '백'주부는 내가 그를 좋아하는 '백' 가지 이유 중 일부일 뿐이다.


평소에도 백종원의 식당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여러 식당들은 "싸지만 결코 싸구려가 아닌 음식"으로 외식업계 시장에 자리를 잡아 왔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그의 음식이 만족스러웠다. 화학조미료를 쓰는 일을 두고 입방아에 올랐지만, 그는 "먹고 행복해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따라 조미료의 감칠맛을 당당하게 이용했고,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는 방송에서도 시청자의 입장에서 대화할 줄 아는 소통능력을  보였다.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 준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백종원은 변변한 요리 도구를 갖추지 못한 시청자를 배려하여 계량컵 대신 종이컵을 이용해 손쉽게 요리를 할 수 있도록 했고, 여느 셰프들처럼 통후추를 멋지게 갈아서 쓰기보다는 시중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 후추를 사용했다. 별일 아닌 일로 그의 발언을 트집잡아 사과를 요구하는 누리꾼의 장난에도 그는 일일이 응대하고 사과하며 시청자들과 소통할 줄 아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그는 20여 년간 외식업에 종사하면서 익혀온 그만의 요리 비법을 아낌없이 방출했다. 핵심은 쉬우면서도 '고급진' 레시피다. 여기서 '고급지다'는 말은 고급스러운 것과 대비를 이루는 듯하다. 고급스러운 음식이 비싸고 뛰어난 요리라면 ‘고급진’ 음식은 그렇게 비싸지 않으면서도 그럴싸한 요리를 뜻한달까. 그는 제대로 된 식재료를 구비하지 못한 1인 가구도 그럴싸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준다. 가령 다루기도 어렵고 뒤처리도 까다로운 진짜 생선을 사용하기 보다는 생선 통조림을 이용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의 소통능력과 ‘고급진’ 레시피만으로는 지금의 백종원 열풍을 모두 설명해 내기가 어렵다. 비슷한 레시피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다. 물론 백종원의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을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파악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의 능력보다도 그가 건드린 대중의 욕망에 주목하고 싶다.



백종원의 요리는 일단 맛있다. 여기서 맛을 담당하는 핵심 재료는 단맛을 내는  설탕이다. 그는 '슈가보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설탕에 대한 애정이 크다. "설탕을 안 넣어서 맛없는 것보다 설탕을 많이 넣어서 맛있는 게 낫다"는 게 백종원의 지론이다. 그가 설탕을 폭포처럼 붓는 장면은 많은 화제가 되었다.


그의 설탕 사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설탕은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내 몸을 해치는 치명적인 유혹'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설탕은 치아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고혈압과 당뇨병의 원인으로 여겨졌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당을 보충하고 기분을 좋게 하는 에너지원인 설탕을 원했지만,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안고 설탕을 먹어야 했다.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는 주부들은 조청이나 올리고당 등으로 설탕을 대체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백종원은 설탕에 관한 기존의 부정적 견해를 반박하면서 설탕으로 맛을 내는 데 집중했다. 그는 맛없는 건강보다는 맛있는 행복을 과감하게 설파했다.


대중은 현재의 만족을 추구하는 ‘슈가보이’ 백종원에게 환호했다. 특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세대에게는 건강을 위해 단맛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웰빙은 그들의 비루한  현실과 견주어 봤을 때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였다. 이미 스스로를 망했다고 생각하는 청년 세대는 더 이상 포기할 것이 없었다. 어떻게 될지 모를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단맛을 포기하는 일은 부당하게 느껴졌다. 궁지에 몰린 대중의 원초적 욕망은 많은 양의 설탕이 폭포처럼 투하되는 이미지에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얻었다.


따라서 백종원의 인기를 그의 레시피, 더 나아가서 진정성이나 의사소통 능력에서 찾으려는 시도들은 단순한 평가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는 원인은 그 대상에게 그럴 만한 요소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안의 결핍에서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 욕망의 대상과 욕망의 원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진단은 절반의 진리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백종원에 대한 열광의 원인을 백종원 개인이 아닌 결핍의 산물로 해석했을 때 그는 옳았다. 하지만 그 원인을 엄마가 주는 사랑의 결핍으로 보면서 논의는 이상해졌다. 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백종원을 보면서 엄마가 떠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를 백주부로 부르지만 주부가 꼭 엄마라는 법도 없거니와 그가 해주는 밥은 집밥이라기보다는 식당밥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종원에 대한 대중의 열광을 엄마의 음식이라는 최초의 절대적 만족을 반복하려는 욕망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백종원에 대한 대중의 열망은 과거 회귀적 욕망이라기보다는 암담한 미래에 대한 체념적 반작용으로서의 쾌락 추구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백종원의 인기는 우리 사회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좌절된 심리적 현실에서 가능했다. 그는 주방을 빼앗기고 옥상에서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고급진 요리를 만들었다. 그는 주어진 조건에 불평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열심히 자기 일을 해낼 줄 아는 능력을 갖췄다. 그러면서도 그는 보는 이들에게 난관을 극복하고 도전하라는 식으로 훈수를 두지 않는다. 그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알려줄 뿐이다. 그의 겸양은 기본적으로 미덕이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태도는 비정치적으로 윤색된 세계 속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가 그럴싸해 보이는 음식 뿐이라는 역설적 진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약간의 씁쓸함을 남긴다.


이 글을 마무리할 때쯤에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했던 백종원의 위치가 흔들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또 다른 강자로 떠오른 인물은 종이 접기 아저씨 김영만이다. 그는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종이 접기를 가르쳤던 추억의 인물이다. 2030세대라면 누구나 김영만을 보며 색종이를 접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날 누리꾼들은 김영만의 방송을 지켜보며 애뜻한 마음에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그러던 중 종이접기가 어렵다고 투덜대는 누리꾼을 향해 "이제 어른이 됐으니까 잘 따라할 수 있을거예요"라고 한 김영만 씨의 말 때문에 온라인은 눈물바다가 됐다.


백종원이 더 이상 포기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은 세대를 향해  설탕의  단맛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환호를 끌어냈다면, 청년 세대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현재의 고충까지 모두 알고 있을 것 같은 김영만은 우리를 어른으로 대우하며 격려했다는 점에서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다. 두 사람이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둘 다 똑같이 대중의 결핍을 건드렸다. 청년 세대는 달콤한 설탕과 따뜻한 격려에 열광할 정도로 열악하다.


정재원 에디공 프로그래머, <복음과 상황> 15년 8월호에 게재.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 PREV |  1  |  ···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225  |  NEXT >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