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냉장고를 부탁해 - 고장 난 욕망을 부탁해 향유/Media 2015.04.01 15:21

맛집 탐방에 열을 올리던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맛집을 찾기보다는 집에서 요리하는 횟수가 늘었다. 경제적 어려움 탓도 있겠지만, 예능의 대세로 떠오른 먹방(음식을 먹는 방송) 프로그램의 영향이 크다. 그중 JTBC에서 방영 중인 <냉장고를 부탁해>는 단연 돋보인다. 내밀한 영역인 냉장고를 스튜디오에 통째로 가져온 것 자체가 파격적이다. 게다가 우리 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연예인의 냉장고 안에서 보잘것없는 음식재료로 믿기 힘든 요리를 만들어내는 셰프들의 마술 같은 요리 솜씨 또한 놀랍다.



시청자는 연예인의 냉장고에서 남아서 처치가 곤란한 식자재,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스, 곰팡이 핀 음식 등 우리네 냉장고 속에도 있는 것들을 발견한다. 하지만 8명의 셰프는 이러한 재료로 이탈리아식 오믈렛 프리타타, 스위스 요리 퐁듀, 멕시칸 음식 타코를 만들어낸다. 쓰레기가 될 운명이던 음식이 식욕을 자극하는 ‘맛 깡패’로 변신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15분이다.


침샘을 자극하는 욕구와 최초 만족을 자극하는 욕망


<냉장고를 부탁해>의 인기 비결은 단지 맛있는 음식으로 식욕을 해결해줬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식욕은 유기체 내 영양분이 부족하여 생긴 긴장 상태이므로 어떤 음식물이든 섭취하면 해결될 문제이다. 하지만 셰프의 요리는 배고픔으로 인한 긴장을 완화했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쾌락을 주었다.



가령 15회 차에 출연한 god의 멤버 박준형이 미카엘 셰프의 ‘백 투 더 치킨’을 맛보고 감탄했던 이유는 단지 미감을 만족하게 해주는 음식을 먹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욕이 나올 것 같다며 그 음식을 극찬했던 더 근본적인 이유는 데뷔 전에 동고동락하던 god 멤버들과 함께 먹었던 ‘바로 그 맛’을 미카엘 셰프가 정확히 재연했기 때문이다. 이때 재연된 바로 그 맛은 식욕이라는 단순한 욕구가 아닌 욕망의 차원에 속한다. 셰프는 최초의 만족 경험을 반복하려는 욕망을 적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철학자의 냉장고 VS 셰프의 냉장고


최근 들어 셰프의 인기가 상한가를 치고 있다. 셰프가 출연하지 않는 예능을 찾기 힘든 정도이다. 기어이 ‘셰프테이너’(셰프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냉장고를 부탁해>만 보더라도 MC와 게스트를 제외한 모든 참가자를 8인의 셰프 군단으로 꾸렸다. 한때 천대 받던 요리사는 이제는 ‘셰프’라는 이름으로 셀러브리티 대우를 받는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이 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집 냉장고를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최초의 만족 경험을 약속하는 제품(‘행복한’ 콩, ‘우리집’ 된장찌개, ‘엄마’ 두부, ‘시골’ 간장, ‘고향’ 만두 따위 등)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기성품은 최초의 절대 만족을 결코 충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욕망은 늘 결핍되어 있다. 자본주의는 욕망의 이러한 속성에 기반해서 상품을 생산한다. 계속하여 절대 만족을 약속하는 신제품을 생산하는 식이다. 하지만 욕망의 충족을 약속한 음식이 냉장고에 과도하게 쌓이면, 오히려 그 대상은 욕망의 걸림돌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가령 없어서 못 먹는다는 꿀이 들어간 감자칩  한 상자를 우연히 얻었다고 가정해 보자. 처음 한두 봉지야 맛있게 먹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과자에 질려 더 이상 눈길조차 주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도함은 자본주의의 필연처럼 보인다. 마트에서 파는 물건은 낱개로 판매되는 경우가 없다. 요구르트를 하나 마시고 싶어도 최소 5개 묶음으로 구매해야 하고, 간혹 낱개로 파는 물건일지라도 1+1이나 2+1식의 할인 판매 정책에 마음을 빼앗겨 기어코 두 개 이상을 사게 된다.



그래서 한 철학자는 냉장고를 없애자고 말했다. 과잉 소비를 부추기는 거대한 산업자본의 공략을 무화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상품의 저장고인 냉장고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야 가족의 건강도 지키고 재래시장도 살리며 생태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글은 배부른 철학자의 비현실적 주장으로 치부됐다.


그의 글이 반감을 산 이유는 대형마트와 냉장고의 공생관계를 부정일변도로 묘사한 탓이 크다. 그는 그 둘의 관계가 서민적일 수 있다는 현실을 간과했다. 마트는 늦은 시간까지 격무에 시달린 서민에게 할인 판매가 상시로 이뤄지기 때문에 싼 값에 많은 상품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다. 늘지 않는 가처분 소득에 대한 대안으로 서민들은 합리적 소비를 선택한 것이다. 이때 저장고 노릇을 하는 냉장고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철학자가 없애자고 외친 냉장고는 탐욕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절약의 상징이라는 점을 그는 놓치고 있었다.


하지만 서민의 냉장고에도 한계는 있다. 아끼려면 1+1과 같은 상품을 과소비해야 하는 산업자본의 기묘한 논리 속에서 냉장고에는 미처 먹지 못한 음식물들이 쌓이게 되고 욕망은 유통기한을 넘겨 부패하는 음식물 앞에 시련을 맞는다.


이러한 위기 속에 구원 투수처럼 등장한 게 바로 셰프이다. 그들은 자본의 모순과 욕망의 시련이라는 난제가 응축된 냉장고를 통째로 가져와 단 15분 안에 문제를 해결한다. 냉장고를 없애자는 철학자의 비현실적 제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마법적 해법을 그들은 매주 선보이고 있다. 당분간 셰프의 전성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정재원 에디공 프로그래머, <복음과 상황> 15년 4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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