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K팝스타 - 우는 승자, 위로하는 패자? 향유/Media 2015.02.13 13:2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하나인 〈K팝스타〉 예고편에서 눈물 흘리는 참가자의 모습이 나온다면, 그는 합격일까 불합격일까?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시청자는 아마도 바로 정답을 맞힐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십중팔구 ‘합격자’이다. 경쟁에서 패한 다른 참가자는 눈물을 흘리는 합격자를 위로한다. 상대를 이겨야 살아남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승자 한 명을 제외한 다른 모든 참가자의 불합격을 다루는 방식이 이러하다.


혹자는 승자가 패자를 배려하여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보단 패자와의 이별을 슬퍼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승자의 위치에 오른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루저’로 낙인찍는 무자비한 현실을 고려할 때, 불합격자를 배려하는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순수한 모습에 아빠 미소가 절로 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력 좋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까지 갖춘 승자의 눈물이 (그 진정성과 상관없이) 강요된 결과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와 연관한 두 개의 오디션 장면을 살펴보자. 


‘승자의 눈물, 패자의 위로’만 바람직한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슈퍼스타K〉 시즌 6에서 필리핀 걸그룹 미카는 외국인 참가자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Top 6’ 직전까지 올라가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미카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호감이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미카는 심사위원에게는 우수한 평가를 받았지만, 시청자들의 인기투표에서는 항상 꼴찌를 지켰다. 이렇듯 미카가 대중들로부터 호감을 얻지 못한 이유는, 이미 자국에서 데뷔한 가수라는 경력을 숨겼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패자에 대한 배려의 미덕을 갖추지 못한 채 승리의 환호를 지르는 모습이 화면에 자주 비친 탓이 컸다. 패배한 팀을 위로하기는커녕 좋아서 날뛰는 미카의 모습을 보면서 네티즌들은 ‘한국 정서’와 맞지 않는다며 불쾌해했던 것이다.


이번엔 다시 〈K팝스타〉의 한 장면이다. 이번 시즌 5회차 방송에서 어린 참가자들로 구성된 랭킹오디션 파이널, 가능성 조의 대결이 벌어졌다. 총 7명이 참가해 5명은 합격, 나머지 2명은 탈락했다. 그중 가까스로 합격한 5위 퍼스티나 류는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해 뒤늦게 합격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기뻐하기보단 자신의 오른편에 선 불합격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를 본 양현석 심사위원은 “떨어진 친구들 보고 좋아하지도 못한다”며 “마음이 너무 예쁘다”고 그녀를 칭찬했다. 퍼스티나 류에겐 ‘붙은 게 더 미안한 마음’이라는 자막이 어김없이 붙었고, 탈락자는 괜찮다며 퍼스티나 류를 다독였다. 연출자는 그녀의 착한 눈물을 카메라에 담아 방송으로 내보낸 것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일 경우에는 지탄하는 걸까. 우선 참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는 형식에서 다른 참가자를 꺾고 올라가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합격자가 있으면 불합격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는 대중문화 형식의 ‘리얼리티’이다. 하지만 일반인 참가자가 같은 처지에 있던 다른 이들과 합격과 탈락이라는 갈림길을 두고 이별하는 건 힘든 일이다. 탈락하여 방송 무대 밖으로 돌아가는 상대의 모습은 조금 전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합격자들은 ‘탈락’과 ‘무대 없음’의 리얼리티를 감당하지 못한 채 도덕의 범주로 도피한다. ‘화려한 무대 위의 스타가 되고 싶은 나’와 ‘그저 노래를 좋아하는 일반인’이라는 두 정체성의 분열을 패자를 위해 흘리는 울음이라는 착한 배려를 통해 상상적으로 봉합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승자가 흘리는 배려의 눈물이 단지 상대방 소타자(the small other)을 위한 예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탈락자가 흘려야 할 눈물을 승자가 흘리고, 승자가 해야 할 위로를 패자가 하는 이러한 전도된 상황은, 참가자들의 경쟁을 바라보고 있는 제3자의 시선, 즉 대타자(the big Other)를 위한 것으로 해석할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허용된 진정성’, 서바이벌을 작동시키는 질서



대타자는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하는 상징적 질서(약자를 배려해야 한다, 부모를 사랑해야 한다 등)를 의미한다. 따라서 승자와 패자 사이에 주고받는 눈물과 위로라는 배려는 일반인 참가자 간의 우정 어린 관계를 확인하는 제스처임과 동시에, 서바이벌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쟁 질서를 안전하게 유지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불합격자들이 탈락의 쓴잔을 마실 때마다 서러운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반복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남은 참가자들은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고, 감동과 공감을 원했던 대중은 불편한 상황을 피해 채널을 돌릴 것이다. 


대타자는 단지 상징적 질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서를 담보하는 인격적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낸다. 〈K팝스타〉에서 대타자의 대리인은 단연 심사위원이다. 심사위원들은 탈락자들을 향해 ‘웃는 모습으로 헤어지자’며 다독이고, 합격자의 착한 눈물에 대해서는 ‘마음이 예쁘다’고 칭찬한다. 실력 있고 마음씨까지 고운 참가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심사위원의 시선은 대타자의 것과 일치한다. 


기획사 사장이기도한 심사위원들이 마음씨 고운 합격자들을 반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가까운 장래에 기획사의 소속 가수가 될 참가자가 실력은 있지만 탈락자를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비친다면, 잠재적 수익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한다는 건, ‘배려하라’는 대타자의 요구를 눈물이라는 진정성 있는 형식을 통해 행동하도록 강요받는다는 걸 의미한다. (반복하여 말하지만 여기서 대타자가 요구하는 배려는, 상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서바이벌’이라는 경쟁 형식을 매끈하게 작동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K팝스타〉의 감동 원천이자, 심사위원들이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진정성’이라는 말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박진영 씨는 매회 버릇처럼 말한다. “다른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지 마라, 그건 거짓이다.” “평소 말하듯이 노래하라.” “진정성이 없으면 감동을 줄 수 없다.” 하지만 방송에서 발휘될 수 있는 진정성이란, 도덕적 범주를 벗어나지 않은 것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가령 저항과 분노를 담은 록 음악은 이미, 배제되어 있다. 필리핀 걸 그룹 미카처럼 승리의 기쁨을 환호의 형식으로 표현할 수도 없는 일이다. 상품성 없는 진정성도 마찬가지이다. 속삭이듯 차분하게 노래하는 스타일의 참가자는 ‘마음을 때리지 못하고 구름처럼 머리 위로 지나가는 소리’(박진영), ‘기승전결 없는 지루한 노래’(양현석)로 혹평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통해 전달되는 진정성은 오히려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기제로 작동한다. 왜냐하면 허용된 진정성이란 시장에 부합하는 ‘안전한 진정성’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박진영 씨가 늘상 강조하는, 내용과 표현 형식의 일치라는 고전주의적 아름다움에서 감동을 받지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는 건, 그 진정성이 대타자에 의해 강요된 (하지만 주체 입장에서는 자발적인) 선택이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의 진정성은, 엄밀한 의미에서 참가자의 ‘진짜’ 진정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타인을 배려하는 따듯한 마음을 깎아내리고 싶진 않다. 배려심 많은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이 그렇지 않은 이들과 지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의 이타성이 늘 긍정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다. 진정한 변화는 잘못에 대한 회개가 아니라 선행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재원 에디공 프로그래머, <복음과 상황> 2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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