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내 보험 없애기 1] 보험 해약을 공동체 의제로 제안하기까지 공동체 프로젝트 2014.06.17 23:06

작은 교회 공동체를 섬기고 있다. 15명도 채 되지 않는 적은 수의 지체들과 함께한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서야 함께 교회를 이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는 여전히 교회에 늦는 문제로 스트레스 받고, 서로의 반복되는 미성숙한 모습에 실망한다. 하지만 그런 미약함 속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교회 실험들을 시도하고 있다. 그 시행착오를 함께 나누고 싶다.


보험이 왜 문제인 거지


2000년 어느 겨울. 나는 <거꾸로와 삐따기의 문화 만들기>(꺼삐문)라는 크리스천 문화 단체를 만났다. 당시에는 기독교 문화관에 대한 관심이 꽤 높았고, 많은 사람이 문화 관련 모임에 몰리는 때였다. 물론 '박준용'이라는 열정적 활동가가 있었기에 더욱 그랬을 거다. 


당시 우리가 읽던 책은 한스 로크마허의 <현대 예술과 문화의 죽음>,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 문화관> 등이었다. 그런데 문화관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자끄 엘룰의 서적도 우리의 독서 목록에 포함됐다. 엘륄은 <하나님이냐 돈이냐>라는 제목의 책에서, 당시 나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저축’을 문제삼고 있었다. 사실 저축은 근면 성실의 상징이고, 마땅히 권장되던 행위였는데, 엘륄은 저축이 미래의 불안을 돈으로 해소하려는 반신앙적 행위라고 규정짓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보험’ 이야기를 하게 됐다. 보험이야말로 미래에 있을지 모르는 위험을 신앙 대신 돈으로 대비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적 보험 체계가 잘 마련되어 있는 프랑스 사회와, 보장률이 형편없이 낮은 우리의 보험 체계를 동일 선상에 놓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보험은 여전히 찜찜함으로 남았다. 


이후로도 <하나님이냐 돈이냐>를 볼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리스도인에게 돈 문제만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때마다 보험 문제는 쉽사리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보험이 문제가 되다


2009년 8월이었던가, 실비보험 체계가 계약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바뀐다는 이유로, 실비보험 막차 타기 붐이 일었다. 나의 아버지는 보험 체계가 바뀌기 전에 반드시 실비를 가입해야 한다며 내 이름으로 월 9만 원을 내야하는 보험에 가입했다. 그날 나는 아버지의 강제로 어쩔 수 없이 보험에 가입했다고 교회 게시판에 털어놓았다.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교회 공동체는 내 실비보험을 양해(?)해 주었다. 


보험에 가입한 지 4년이 지나고 아버지는 보험료 부담을 나에게 넘기며, 계약자를 내 이름으로 바꾸라고 통보하셨다. 결국 나는 진짜 내 보험을 갖게 됐다. 그리고 진짜 고민이 시작됐다. 보험 해약 권한이 내게 건너온 상황에서 이 보험을 어찌해야 할까.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하라'는 말씀과 내일 일을 대비하는 보험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은 그저 은유로만 받아들이고 말 것인가. 


솔직히 두려웠다. 보험을 해약하고 난 후, 혹여나 큰 사고라도 터지면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결국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밖에 없을 텐데, 하나님에 대한 나의 신앙은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오히려 보험 해약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은 아닐까. 보험이 그렇게 나쁜 일일까. 쉽게 결정 내리기 어려웠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 포스팅 : '보험 끊기')


보험과 정면으로 마주대하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2년을 보냈고, 나는 보험의 거품과 허상을 낱낱이 폭로하는 시민사회 진영의 글과 책을 접하게 됐다. (관련 포스팅: '보험에 관한 오해')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개인의 불안을 경감시키기 위한 ‘사적 보험’을 없애고,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더불어 감당하는 ‘공적 기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의 지체들은 의료비 문제로 고통 받지 않길 소망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to be continue...)




  • 샬롬 | 2014.06.24 18:45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공적기금'이라는 게 뜻은 좋은데 참 힘들죠.
    그런 뜻으로 시작한 장기려 선생님의 청십자 의료보험이 전국민의료보험으로 이어지면서 공적기금의 성격보다는 재정적인 성격이 더 두드러지는 걸 보면 늘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료와 관련된 기금, 재정에 대해 들을 때면 자주 떠오르는 내용이 있습니다.

    "의료에 대한 가장 큰 도덕적 딜레마는 부족한 재원을 분배하기 위한 최소한으로 불공정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 에디공 | 2014.06.27 13:04 신고 | PERMALINK | EDIT/DEL

      앗, 샬롬님. 일단 송구스럽습니다. 지난 3월에 방송을 재개한다고 해놓고, 약속을 못 지키고 있네요. 일신상에 변화가 많다보니 일이 뜻대로 되질 않네요.

      장기려 선생님과 관련한 내용은 모르고 있었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재정의 고갈을 걱정하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논의 과정을 올리겠지만, 가급적 현실적인 대책들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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