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가르 파르하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를 보고 향유/Movie 2014.01.10 14:32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신작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원래는 ‘과거’(Le passe, The Past)라는 제목의 영화이다. 하지만 국내 배급사의 결정에 따라 다소 시적인 문장으로 제목이 바뀌어 개봉됐다. 아마도 ‘과거’(혹은 ‘지난날’)라는 제목으로는 영화를 알리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인 거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과거’라는 제목이 영화의 핵심을 담고 있는지라 바뀐 제목은 다소 아쉽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 영화는 <우리 선희>나 <블루 재스민>과 같이 ‘과거’가 주인공인 작품이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모두 과거를 살고 있다. (그들은 과거‘에’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산다.) 마리는 이혼 수속을 밟기 위해 4년 만에 집을 찾은 전 남편 아마드를 호텔이 아닌 집에서 묵게 한다. 집에는 이미 재혼 상대자인 사미르와 그의 아들 푸아드가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마리는 행복했던 가정을 두고 아무런 설명 없이 떠난 아마드에 대한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 


아마드는 마리의 세 번째 결혼에 반대하는 마리의 딸 루시(마리가 첫 남편 사이에 낳은 딸)를 만나 엄마의 재혼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친구가 보기에 아마드의 개입은 지나치다. 하지만 아마드는 별거 전처럼 행동한다. 그는 고장난 싱크대 개수대를 고치고, 페인트를 새로 칠하는 일에도 자연스레 나선다. 마치 그가 집주인으로 살았던 4년 전처럼 말이다. 


마리의 연인 사미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그는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 셀린느가 있다. 평소 우울증을 앓던 그녀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며 세탁소에서 세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사미르는 그런 아내를 둔 채 마리와의 재혼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는 마리에게 홀딱 반해서 아내를 버린 게 아니다. 사미르의 외도는, 아내에게 지쳐서가 아니라, 오히려 질투를 유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마드와 마리, 마리와 사미르, 사미르와 셀린느. 이들의 뒤틀린 관계는 과거라는 견고한 장애물에 가로막혀 현재를 살지도, 미래를 기약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는 우리의 삶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아무리 미래지향적인 사람에게도 과거의 무게가 마음속에 남아있다”며 여기에 우리 인생의 딜레마가 있다고 지적했다. 감독은 과거만큼 우리 삶에 결정적인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딜레마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과거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만큼이나 다루기 어렵다. 그저 잊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억압된 과거는 결정적 순간에 회귀하여 우리의 발목을 잡고, 결국 패턴화한 실패의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라는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를 방어한다. 우선 아마드는 4년 전 일을 고백하여 과거의 일을 매듭짓고자 한다. 그가 자신이 우울했던 이유와 별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마리에게 털어놓으려고 한다. 하지만 마리는 과거 따위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아마드와의 고백을 사전 봉쇄한다. 아마드의 무책임한 선택의 이유를 듣고 싶을 법도한데 그녀는 단호하다. 마리는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4년 전 일과 화해하는 대신, 사미르와의 재혼이라는 미래를 선택한다. 하지만 사미르는 마리와의 미래보다는 셀린느와의 과거에 마음이 기울어져 있다. 사미르는 셀린느가 깨어나기길 바랄 뿐이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트라우마다. 지난날의 경험이 모두 이해되고 명확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꿈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미처 해결되지 않은 과거를 반복한다.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그렇게 반복되는 과거라는 상흔을 아무런 회상 장면없이 현재의 삶에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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