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사이비'를 보고 향유/Movie 2013.11.28 01:04




연상호 감독의 <사이비>를 봤다. 


영화는 흥미로웠다. 연상호 감독은 종교를 다룬 영화들이 가지게 되는 진부한 주장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는 단지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고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왜 아편을 선택하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평면적인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넘어, 쉽사리 신뢰할 수 없는 선과 마냥 욕할 수 없는 악의 갈등을 보여준 점에서 훌륭하다. 


영화를 보면서 취재차 만났던 신천지, JMS 등 사이비(혹은 이단)에 소속된 신자들이 생각났다. 내가 만난 그들은 단지 무지해서 이단에 빠진 게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행과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능동적으로 교회에 매달렸다. 매사 불안한 그들은 무엇이든 믿고 싶었다. 특히, 자신들의 결핍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장담하는 지도자에 대한 애착이 심했다. 그래서인지 신도들은 그들의 목사가 혹여나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애써 외면하거나 부인했다. 


물론 이건 단지 사이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제도권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목사가 수년간 여신도들을 성폭행했어도, 목사의 학위가 표절과 대필이었어도 그 모든 일을 부정한다. 간혹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자신들의 불행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가정된 카리마스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개는 이런 신도들을 보면서, 그들의 맹신을 지적한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맹신이 잘못됐다고 느껴지기 보다는,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갑갑함이 더 크게 느꼈다. 영화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암환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약 대신 사이비 교회에서 나눠주는 생명수를 마시고, 십사만사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천국의 입장권을 얻은 사실로 기뻐한다. 그녀를 지켜보는 남편은 아내가 죽음 앞에서 행복해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해 한다. 여기서 맹신은 단지 부정적인 것만으로 치부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그녀에게 그러한 행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이비의 진실을 폭로하려하는 주인공 김민철의 딸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게 집은 지옥과 같은 곳이다. 하지만 교회는 그녀에게 등록금을 대줬고, 그녀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위로했다. 물론 그녀는 속은 거다. 교회의 실질적 리더인 최 장로는 그녀를 윤락업소에 취업시켜 그녀를 착취했다. 하지만 그녀는 최 장로를 원망하기보다는, 그곳에서 다른 삶에 대한 희망을 품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거짓된 희망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그런 희망조차 가질 수 없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김민철은 철저하게 무력하다. 게다가 그는 딸과 아내를 밥먹듯이 때리는 폭력적인 가장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사탄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김민철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인생을 포기한 듯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그만이 진실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은 무기력하다. 


<사이비>는 이렇듯, 무기력한 진실과 (거짓) 희망을 주는 악과의 대결을 보여준다. 통상적인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결을 넘어서는 구도이다. 이러한 복합적 갈등 덕분에 영화는 마지막까지 흥미와 긴장을 유지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암울함을 떨쳐낼 수 없어 곤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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