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형용모순 향유/Book 2013.10.24 10:43

세상은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며 사는 게 힘들지라도 자기계발해야 한다고 독려합니다. 내세우는 명분들은 그럴싸합니다. 평생에 걸친 자기 주도적 학습, 위기와 불확실성을 기회로 삼는 기업가 정신, 성실·믿음·치유를 통한 긍정의 마인드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긍정의 힘’, ‘야베스의 기도’ 등 긍정의 신학을 적극 유포하며 자기계발에 신학적 정당성을 부여한 세력이 오늘날의 교회입니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는 자기계발 담론에 대한 본격 비판서인 <거대한 사기극>의 저자 이원석 씨를 모시고 자기계발 담론의 허와 실을 짚어봤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가장 뜨거운 이슈를 선정하여 다루는 ‘박샘과 정도령의 이슈 따라잡기’의 첫 방송이기도 합니다. 이 씨는 방송에 출연하며 "자기계발서 '천 권을 읽어봐도 루저가 된다. 나는 '절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저자는 자기계발 담론과 개신교의 친화성을 강조합니다. 자기계발의 뿌리는 미국 청교도주의라며 개신교를 정조준하기도 합니다. 그는 성경을 읽는 신자들의 세계관이 온통 자기계발 담론으로 오염되어 있다고 지적, 성경에 대한 신자들의 왜곡된 시선을 꼬집습니다. 


그가 내세우는 대안은 '공조'입니다. 스스로 돕는 자조(self-help)의 세계에서 서로 돕는 ‘공조’의 세계로 나아가자는 겁니다. 아울러 그는 유기체적인 공동체를 추구하는 교회야말로 대안적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곳임을 강조합니다. 


아래는 박샘과 정도령이 <거대한 사기극>의 저자 이원석 씨와 나눈 대화를 요약, 정리한 내용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튠즈에서 <박샘의 위대한 수다> 듣기


▶팟빵에서 <박샘의 위대한 수다> 듣기


박샘: <거대한 사기극>은 자기계발 담론의 실체를 폭로한 책이다. 어떤 내용을 담았나. 


이원석: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난 책이 자기계발서이다. 대표적으로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론다 번의 <시크릿> 등이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추천으로 자기계발서를 읽었다. 그 당시에는 ‘꿈을 크게 가지면, 나의 삶도 커지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하지만 천 권의 자기계발서를 읽었는데도, 현재 내 모습은 독거 총각이고 비루한 루저일 뿐이다.


박샘: 저자가 생각하는 자기계발의 정의는 무엇인가. 


이원석: 자기계발은 스스로 돕는 거다. 영어로는 ‘self-help’이다. 새뮤얼 스마일즈가 쓴 <자조론>이라는 책을 보면 본문 첫 문장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게 바로 ‘자조’이다. 


정도령: 상당수의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말인 줄 안다. 


이원석: 실제로 복음주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그 말이 성경에 있는 것을 답했다. 하지만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다. 왜냐하면 성경의 가르침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자조론>에 따르면 내가 먼저 나를 도와야 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도 돕지 않는다. 


박샘: 성경에 없는 말이 기독교인에게 자연스레 받아들여진 이유가 무엇인가.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이원석: 나는 그 시발점에 청교도가 있다고 본다. 막스 베버라는 사회학자가 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논문을 보면, 개신교가 자본주의의 동력이 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확히 말하자면, 막스 베버는 칼빈의 예정론을 중심으로 자신의 주장을 풀어내는데, 요점은 나의 구원의 보장을 현실에서의 성실한 노력과 그 노력에 기인한 재산의 축적을 통해 확인한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은 청교도 가르침의 세속화 버전으로 미국과 깊은 연관이 있다. 


정도령: 보충하자면, 칼빈의 예정설은 우리의 구원이 예정되어 있다는 건데,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받은 자인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 하지만 세상에서의 성공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지며 그분이 나를 구원하였다는 확증이 된다. 


이원석: 여기서 중요한 건 성실함이다. 청교도들은 미국 땅을 개척했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마을을 만들고 길을 포장하고 금을 캔 것이다. 원래는 연방정부가 도로를 깔고 치안도 돌봐야 하지만 이들은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했다. 그들은 자경단을 조직했고, 방문 세일즈맨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이것이 미국 청교도의 개척 정신이다. 


정도령: 우리 상황과 연결해 보자면, 한국의 대표적 청교도주의자 김남준 목사가 <게으름>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 역시 자기계발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을 거 같다. 


이원석: 기독교 윤리학의 핵심에는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악’이 있다. 그런데 그 죄목들은 시대와 입장에 따라 심각한 죄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김남준 목사의 <게으름>을 보면, 7가지 죄악 중에 게으름이 유독 강조된다. 그는 우리가 게을러지면 타락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의문이 생긴다. 성실하게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리된 성실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 단지 성실하게 사는 것은 내 삶의 주인 됨을 증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칼빈주의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신전 의식 속에 살아간다. 내 삶의 주인이 나이며, 내 인생의 코치도 나라고 주장하는 자기계발 담론과는 다르다. 


정도령: 하지만 신앙인은 내 인생의 주인을 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개는 하나님이 도와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저자의 주장을 들어보면 기독교인조차도 하나님을 배제한 채 혼자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거 같다. 


이원석: 물론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배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인과 자기계발을 추구하는 사람이 공유하는 건, 내가 먼저라는 거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미국 기독교인의 절반이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믿는다. 어떻게 이런 비성경적 말이 성경에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 미국인의 역사와 문화가 스스로의 개척을 통해 일궈져 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계발 담론의 세 가지 유형



이원석, <거대한 사기극>이원석, <거대한 사기극>

박샘: 시중에는 다양한 자기계발서가 있다. 성실하게 살라고 주문하는 자기계발서가 있는가 하면, 굉장히 문학적인 자기계발서도 있다. 저자는 책에서 자기계발을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원석: 우선 크게는 두 개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성실하게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꿈을 꾸면 성공한다는 것이다. 나는 전자를 ‘윤리적 자기계발’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저작으로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이 있다. 후자는 신비적 자기계발이라고 이름 붙였고, 론다 번의 <시크릿>이 가장 대중적인 책이다. 윤리적 자기계발은 노력을 강조하고 신비적 자기계발은 꿈을 강조한다. 전자는 몸을 쓰는 거고, 후자는 좌정하여 명상하는 거다. 하지만 둘 다 모든 문제의 원인과 해법이 나에게 있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정도령: 책을 보면, 윤리적 자기계발이 먼저 있었고, 언제부턴가 신비적 자기계발로 그 형태가 바뀌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자기계발 담론이 윤리에서 신비로 전환된 이유가 있는가. 


이원석: 전환의 핵심엔 미국 대공황이 있다. 대공황 전 미국인은 노력하면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 내 노력만으로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적극적인 사고로 생각의 전환을 주문하는 신비적 자기계발 논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박샘: 그리고 윤리적 자기계발의 한 변종으로 심리적 자기계발을 들고 있다. 


이원석: 공장주가 직공들을 관리하다 보면 여러 심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그때, 공장주들은 노동자를 다독이고 치유하는 방법들을 사용하게 된다. 


박샘: 힐링은 우리 시대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이원석: 오늘날 힐링, 멘토,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이야기들이 범람하고 있다. 성공을 위해 마음속에 맺힌 것을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멘토는 상처받은 이를 품어주고, 그들에게 ‘너는 할 수 있다’, ‘너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며 동기를 부여한다. 


정도령: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도전을 주고, 치유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건 좋은 일 아닌가. 무엇이 문제인가. 


이원석: 혼자는 할 수 없다. 그래서 문제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는 ‘너는 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 모든 문제의 답을 ‘네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가령 교회 안에서 특정 지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람은 제각기 다른 기질과 능력, 은사가 있다. 자기계발서는 자기 안의 재능으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럴 수 없다. 


자기계발이라는 '거대한 사기극'


정도령: 보통 자기계발서는 성공의 가치를 추구한다. 하지만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와 같은 책은 성공을 포기하고 여행을 다니며 NGO 활동을 벌이는 이야기를 다룬다. 성공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책은 자기계발서를 넘어선다고 볼 수 있나. 


이원석: 간혹 고매한 가치관으로 사는 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낸다. 독자 일부는 그 책을 읽고 직장을 포기한 채 제3세계 오지로 봉사활동을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책을 통해 마음을 정화한다. 그리고 밀림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 그런 책은 마치 '아름다운 세상을 만났을 때, 핸드폰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와 같은 것이다. 


박샘: 그런 식으로 보면, 너무 많은 것이 자기계발에 해당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 읽은 위인전들도 모두 자기계발서인가. 전 세계 어느 곳, 어느 시대를 가 봐도 당대의 위인에 관한 이야기는 늘 있었다. 



보도 섀퍼, <12살에 부자가 된 키라>보도 섀퍼, <12살에 부자가 된 키라>

이원석: 우리가 어릴 때 본 동화는 권선징악을 가르친다. 그런데 오늘날 동화는 어떤가. 보도 섀퍼가 쓴 <12살에 부자가 된 키라>를 보면, 키라가 개를 만나는데, 개 이름이 ‘머니’(money)이다. 머니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 부모님이 왜 싸우는지 아니? 돈이 없어서야’라고. 위인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과거에 읽은 위인전은 퀴리 부인, 헬렌 켈러와 같은 정말 ‘위인’들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는 아이돌의 성공기, 혹은 스티브 잡스, 하워드 슐처, 안철수 등 성공한 CEO들의 이야기를 읽는다. 아이돌과 CEO 이 둘의 공통점은 돈이다. 과거에는 부자에 대한 비판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IMF 이후로 우리는 노골적으로 ‘부자되세요’라는 덕담을 주고받게 됐다. 


정도령: 부끄러운 과거를 얘기하면, 2000년도 초기에 제가 했던 선물 대부분은 자기계발서였다. 선물이라는 건 내가 생각했을 때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을 주기 마련인데, 당시에는 <한국의 부자들>이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와 같은 책을 선물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원석: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도 자기계발적으로 읽는다. 예를 들어, 교회는 잠언 31장을 한 달에 한 번 씩 통독하면 천재가 된다고 말한다. 이지성 작가는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고전은 천재의 책이다. 그러므로 고전을 열심히 읽으면 우리의 뇌도 천재의 뇌세포로 변환된다’고 말한다. 그럴 리가 없다. 인문학을 10년 넘게 한 사람을 봐라. 그의 현실은 시간강사이다. 


자조 사회에서 공조 사회로


박샘: 지금까지 자기계발의 열풍에 대한 준엄한 비판을 나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치열한 생존 경쟁의 사회에서 자기계발조차 안 한다면 어떻게 삶을 지탱해 나갈까.


이원석: 우선 자기계발서가 다 나쁜 건 아니다. 가령 시간, 정리, 독서하는 법과 같은 기술에 관한 책은 괜찮다. 삶의 습관을 바꾸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말단이지만 생각을 바꾸면 CEO도 될 수 있다’는 식의 책에는 반대한다. 둘째로, 힐링에 관한 책 중에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책이 있다. 예를 들어 역기능 가정 속에서 자란 사람 중 세상을 왜곡되게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엔, 데이빗 씨멘즈가 쓴 <상한 감정의 치유>나 헨리 나우웬의 <상처받은 치유자> 같은 고전적 책이 도움을 준다. 이 책들은 우리 안의 가능성을 부추기며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요즘의 힐링 담론과는 다르다. 내가 말한 힐링은 내 안의 잘못 녹음된 테이프를 멈추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한다. 스스로 돕는 ‘자조의 세계’에서 서로 돕는 ‘공조의 세계’로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출판사, 카페, 지역 거점의 살롱 등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은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대항문화,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시도로서 해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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