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오종 ‘인 더 하우스’를 보고 향유/Movie 2013.10.11 15:08


새로운 고등학교에 문학선생으로 이직한 제르망. 문학가가 되고 싶었지만 스스로의 재능에 한계를 느껴 꿈을 포기했던 그는 형편없는 작문 숙제들 가운데 눈에 띄는 숙제를 발견한다. 클로드 가르시아의 작문은 그 내용이 바람직해보이지 않지만 흥미를 끄는 글이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갔고 사고로 실직과 장애를 갖게 된 아버지를 둔 클로드의 가정 형편과 숙제를 미리 제출하는 성실성과 재능은 조금만 도와주면 좋은 문학가가 될 거 같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학생을 편애하면 안 된다 는 학교의 정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르망은 클로드를 따로 불러 책을 빌려주고 소설의 시점이나 기본 구조를 설명하며 과외 수업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제자의 소질을 발견하고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했던 대가로 제르망은 모든 것을 잃었다. 학교에서는 잘렸고, 부인은 떠났다. 제르망의 선의는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 되었기에 이런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일까? 사실 제르망이 클로드를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었다고 하기에 그는 클로드의 소설에 지나치게 집착적이지 않았던가? 일례로 클로드가 계속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수학 시험지를 훔쳐다주는 교사는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인 것이 확실하니까. 


그렇다면 과연 제르망은 클로드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제르망은 문학의 다양한 이론을 설명하며 클로드의 소설에 예술성을 담아내도록 충고하지만, 그럴수록 클로드가 만든 이야기는 자극적으로 변했다. 관찰자로서 거리를 유지하라는 충고보다 더욱 냉소적인 글이 되고, 라파의 캐릭터가 특징 없다는 말에 동성애로 커밍아웃하는 캐릭터로 변하며, 주인공의 욕망이 이루어지는 데 장애물이 있어야 한다는 이론에 그는 라파의 엄마와 마음을 통하고 그 장면을 본 라파가 자살하는 사건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클로드는 선생님 때문에 소설 쓰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하기도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제르망이 클로드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클로드에게 제르망은 마지막까지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은 제르망을 다시 찾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제르망은 자신이 클로드의 재능을 알아봤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클로드가 먼저 제르망에게 접근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제르망이 내 준 작문 숙제는 ‘지난 일요일에 내가 한 일’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주제였지만, 클로드가 제출한 숙제는 완벽한 가정이라고 생각해왔던 친구 라파의 집에 방문한 일을 관찰자의 시각으로 적은 것이다. 


더욱이 친구의 엄마에 대한 과한 호기심과 ‘다음 회에 계속’이라는 문구는 그것을 읽은 제르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미리 제출한 형용사 숙제도 그가 앞서 구상한 소설의 주인공으로 라파를 선정한 부연 설명을 통해 흥미를 유발시키면서, 클로드는 자신의 연재를 읽고 싶어 하는 한 명의 독자를 구축했다. 


소설을 창작하는 클로드 그리고 그의 글을 감상하며 평가하는 제르망, 이 둘의 이야기는 창작자와 독자의 위치로 치환했을 때 그들의 관계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창작자로 대변되는 클로드는 제르망에게 “제 글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주셨어요?”라고 재차 물으며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를 확인한다. 물론 제르망은 클로드의 소설을 통속적으로 치부하며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줄 정도가 아니라고 거짓말하지만, 사실 클로드로부터 소설을 받기만 하면 그의 부인 쟝에게 달려가 소설을 공유하곤 했다. 창작자는 비평가의 평가를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방식으로 작품을 써내려가고, 제르망은 클로드가 소설을 통해 어떤 도발적인 말을 하더라도 자신의 창작능력 없음을 인정하며 다음 소설을 읽기를 갈망한다. 제르망이 클로드의 소설에 깊이 매료되자 이제 클로드는 어떠한 대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수학 시험지를 훔쳐다주는 것으로 시작한 테스트는 교내 신문에 제르망을 고발하는 기사를 싣는 정도로 발전했다. 선생으로의 도덕성과 평판을 버리면서 까지 자신의 소설을 읽고 싶어 하는지를 확인한 클로드는 이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지워버리면서 제르망이 자신의 소설에 얼마만큼 중독되어 있는지를 시험했다. 


제르망은 창작자의 모든 시험에 걸려들었다. 심지어 라파가 실제로 자살한 것은 아닌지 걱정했던 그는 소설이 ‘있을 법한 이야기를 구성한 허구’라는 기본적인 명제까지도 잊을 정도였다. 이 사건으로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진 제르망은 더 이상 그의 소설을 읽지 않겠다며 거부를 선언하고 이에 클로드는 제르망의 현실 세계로 침입한다. 클로드 소설의 제2의 독자였던 제르망의 부인 쟝, 그리고 클로드가 제르망의 집에서 쓴 연재 소설의 마지막을 읽은 제르망은 클로드가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그날 서로를 믿지 못하고 관계가 파탄난다. 이러한 현상은 <인더하우스>를 보고 있던 관객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 카메라가 무엇을 보여줘도, 혹은 보여주지 않더라도 어떤 것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감독 프랑수아 오종은 서사의 구조 속에 현실과 가상을 교묘하게 배열하면서 관객을 혼란시킨다. 그는 혼란에 빠진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수준 높은 예술성을 논하지만 막상 재미와 흥미를 따라가는 것이 실상이 아니냐며 유쾌하게 우리를 조롱한다. 뿐만 아니라 성을 소재화한 작품들이 걸려있는 쟝의 갤러리를 성인용품점이라고 폄하하고, 팔리지 않으면 갤러리를 접겠다는 갤러리 소유주의 모습이야말로 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이중성을 꼬집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드는 자신의 소설을 삼류 싸구려라고 비판해도 읽어줄 독자가 필요하기에 이야기를 향한 호기심과 욕망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제르망을 다시 찾아간 것이다. 어느 집이든 자세히 들여다보면 있을 법한 그런 이야기들을 듣기 원하고, 하기 원하는 인간에게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함으로.


박일아 (한양대 연극영화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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