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린 책들 - '안경' 비유에 갇힌 기독교 세계관 향유/Book 2013.05.20 09:43

신동주 CBS PD, 기독교 세계관 분야의 고전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을 버리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가 5월 개편을 맞아 전문 패널을 섭외했다. 그 첫 번째 손님은 기독교 방송국 TV국에서 일하는 신동주 피디. 신 피디는 1993년 CBS에 입사하여 라디오에서 8년, TV에서 10여 년 일했다. 그는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는데, <한국 대중영화 속 기독교>와 <언더우드와 한국개신교 120년>이 신 피디의 작품이다. 이중 <한국 대중영화 속 기독교>는 영화에서 재현되는 기독교에 대해 반성적으로 살펴본, 나름의 화제작이었다. 그리고 신 피디는 2000년도 기윤실의 ‘거짓말 논쟁’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 ‘이윤의 Lies' burger'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기도 했다. 성에 관해 부정적 접근 일색이던 기독교 문화에서 섬세하고 솔직한 성 이야기로 작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2013년, 어렵사리 신 피디가 박샘의 위대한 수다 책 코너 패널로 걸음 했다. 제작진은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신 피디가 어떤 책을 선정하여 좋은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했다. 그런데 주문과 달리, 그는 추천 책이 아니라 읽지 말아야 할 책을 들고 왔다. 코너 제목도 ‘내가 버린 책들’이었다. 그가 실제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다. 그 책은 기독교 세계관 분야에서 고전으로 알려진 제임스 사이어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 사상’이었다.


신 피디는 기독 지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기독교 세계관의 폐해를 짚었다. 그가 가장 심각하게 본 점은 은유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은유는 단연 ‘안경’이다. 기독교 세계관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면 하나님나라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세속적인 생각이나 관점을 바로잡아줄 수 있다고 기독교 세계관은 말한다. 하지만 신 피디는 이 관점과 비유에 반대한다. 그는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안경’을 비유로 회자된 것은 그것이 가진 편리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 사람의 인생관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서서히 만들어지기 마련인데,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마치 세계관을 기독교적으로 바로 잡으면 온전한 것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가 반대하는 또 다른 비유는 ‘도미노 비유’이다. 근본적 질문에 대해 기독교적 관점을 수립하고, 그것이 인격을 형성하고, 그리고 다시 행동으로 이어지는 도미노식 설명은 동화에 불과하다는 게 신 피디의 생각이다. 실제로 우리의 인격이 형성되고 행동이 결정되는 것은 도미노식의 일선형적 모델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 피디는 안경과 도미노 비유로 설명되는 기독교 세계관이 하나의 동화, 혹은 환상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식으로 세계관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대안으로 내세우는 은유는 ‘거미줄’이다. 씨줄과 날줄처럼 우리는 다양한 경험과 생각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도 100%의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하여 기독교적인 인격과 삶을 이뤄갈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매력을 느끼는 일과 사상에 충실하고 고민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혹여나 비기독교적인 것에 오염될까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결국 답이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드러날 것이며, 우리는 다양한 생각 안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이뤄갈 것이다.


다음은 '[박샘의 위대한 수다 에피소드 11] 내가 버린 책들'에서 신동주 PD, 박샘, 정도령이 나눈 대화들이다.


기독교 세계관 ‘안경 비유’에 딴지걸기


신동주: 기독교 방송국 TV국에서 일하고 있다. 93년 입사했고, 올해가 20년째 일하는 해다. 라디오에서 8년, TV에서 10년 정도 일했다.


박샘: 오늘 대화 주제가 ‘내가 버린 책들’이다. 가뜩이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데, 추천할 책이 아니라 버린 책을 소개하는 이유가 있나.


신동주: 무언가 긍정적인 것을 소개하여도 어떤 사람을 알 수 있지만, 싫어하는 것을 통해서도 그 사람을 잘 알 수 있다. 이번에 내가 버린 책들을 통해서 할 수 있는 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오늘 소개할 책을 한 번 버렸다가 인용할 일이 있어 다시 중고 서점에서 샀다. 그 책은 제임스 사이어의 ‘기독교세계관과 현대사상’(IVP)이다.


박샘: 기독교 세계관 분야의 고전이다. 어떤 이유로 이 책을 ‘내가 버린 책들’로 소개하는가.




신동주: 30년 넘게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서 사용했던 용어와 그 뒤에 숨겨진 비유가 있다. 그 비유가 적절한 건가에 대해 의문이 있다. 내가 쓰레기통에 버린 건 비유였다. 아시겠지만 기독교 세계관에서 가장 애용하는 비유는 안경이다. 기독교 세계관 관련 책 서문을 보면, 빨간색 안경을 끼면 빨간색이라고 보인다, 불교적 세계관으로 보면 불교적으로 보인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보면 기독교적으로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박샘: 아무래도 안경이 시각을 교정시켜준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쓴 거 같다.


신동주: 안경만이 세상을 바로 보게 하는 건 아니다. 콘택트렌즈도 있다. 그리고 가령 빨간 안경을 끼면 세상이 빨갛게 보이지만 조명을 빨갛게 사용해도 동일한 효과가 있다. 내가 볼 때 안경 비유를 애용하는 이유는 편리성 때문이다. 우리가 안경점에 가서 “이 안경으로 주세요”라고 하듯이, 세계관도 여러 세계관 중 맘에 드는 걸 하나 골라 착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샘: 편리하면 좋은 거 아닌가. 어떤 문제인가.


신동주: 엄청난 문제다. 살다 보면 알게 되지만,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성숙한다는 건 싸우고 실수하고 무안당하면서, 용기를 내고 사물을 제대로 보는 과정을 거치는 거다. 그런데 어떤 안경 쓴다고 해결되겠나. 모든 건 시간이 걸리는데 안경 비유는 시간이 안 걸린다. 어느 날,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의 영어 제목을 살펴봤다. ‘The Universe Next Door: A Basic Worldview Catalog’라고 나와 있다. 우리의 옆에 있는 세계라고 해놓고 카탈로그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 책은 8개 정도의 세계관을 소개하고서 어떤 세계관을 선택할지 질문을 한다. 이게 상품 카탈로그를 보다가 구매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과연 세계관을 선택할 수 있는 건가?


‘거미줄’을 대안적 비유로


정도령: 저 같은 경우에도 학부 때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을 읽었다. 회상해 보면, 이 책을 읽기 전에 다른 사상을 접하는 걸 두려워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허무주의나 부조리를 이야기할 때, 사무엘 베케트나 카뮈 책을 읽기보다는 제임스 사이어가 소개한 허무주의를 먼저 읽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무장해야지 다른 사상을 접할 때도 흔들리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신동주: 사람들은 오염되는 걸 두려워한다. 그래서 기독교 세계관은 이런 시각으로 보면 실수하지 않을 수 있다며 오염되지 않는 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나에게 영향을 미친 C.S 루이스나 칼 바르트는 다르다. 그들의 책을 읽으며 나는 그 사람의 깊이에도 놀랐지만, 또 하나 더 놀라운 건, 그들의 신앙 형태가 달라진다는 거다. C.S. 루이스 처음엔 무신론자, 그다음엔 이신론자가 되는 식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변했다. 바르트도 마찬가지다. 그는 처음엔 자유주의자로 사회 운동을 열심히 펼쳤지만, 나중엔 하나님과 인간의 간극을 주장하는 신정통주의가 됐다. 지금 이 순간에 완벽하게 기독교적으로 되는 건 가능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믿고 있는 그 순간에 진실한 것이다. 지금 내게 끌리는 것을 끝까지 가 보는 것이다. 그렇게 끝까지 갔을 때, 아닌 것은 아닌 걸로 밝혀진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박샘: 사람들이 비유를 수단으로 쓴다고 생각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비유에 묶이고 비유에 따라 살아가는 거 같다. 혹시 안경 말고 또 다른 문제의 비유는 없나.


신동주: 도미노 비유가 있다. 우리는 무언가 하나를 보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격이 되고, 인격은 행동이 되어, 기독교적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첫 단계를 바로잡아 놓고 다음 단계로 진행되면 아주 기독교적인 결론까지 나갈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사람은 바로 전 단계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수많은 것의 영향을 받는다. 도미노처럼 하나의 라인으로 우리가 형성되지 않는다.


박샘: 그렇다면 신 피디가 생각하는 대안적 비유는 무엇인가.



신동주: 최근에 진화론을 비판하는 학자가 펼친 거미줄 이론을 본 적이 있다. 변이와 진화에는 거미줄처럼 수많은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지금 우리 아이에게 기독교 세계관 책을 읽힌다고 기독교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독교인이 볼 때, 비기독교적으로 보이는 책을 읽더라도 그 안에서 뭔가를 깊이 느껴서 정말 멋진 기독교적 통찰을 끄집어낼 수 있다.


트라우마가 된 기독교 세계관


박샘: 기존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기독교적인 왕도가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신 피디는 그런 왕도는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기독교적이지 않은 경험도 나중에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입장에 따라서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게 항변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나.


신동주: 그게 사실인데 어떡할 거냐? 사실이 중요하다. 그 사실이 우리를 불안하게 할지라도 그게 사실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옛날 <복음과 상황>에서 정정훈 편집위원이 ‘환상 속에 기세(기독교 세계관)가 있다’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동의한다.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에게 실재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동화를 들려준다.


박샘: 말처럼 적용하는 게 쉽지 않다. 구체적인 현상으로 설명해 달라.


신동주: 최근에 두 개의 웹툰을 봤다. 하나는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고, 또 하나는 <무한 동력>이다. <신과 함께>는 무속이나 불교적 세계관으로 사후 세계를 재밌게 그렸다. 그리고 <무한 동력>은 강풀의 순정만화처럼 한 가족의 삶을 담담하고 재밌게 그렸다. 두 개의 웹툰을 보면서 특이한 경험을 했다. 사실 <신과 함께>를 보다가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만두고 <무한 동력>을 봤다. 처음엔 작가 이름을 몰랐다. 웃고 울며 정말 재밌게 봤다. 그런데 작가 이름을 확인했더니 같은 작가였다. 혼자서 이런 질문을 했다. 내가 <무한 동력>을 보면서 저 작가의 무속적 세계관에 영향을 받았을까. 이런 질문은 습관적이고 트라우마적인 거다. 비기독교적 영향을 받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을 40년 넘게 해왔다.


박샘: 너무 오랜 세월 동안 그런 식의 교육을 받다 보면, 무의적으로 그런 사고방식이 생기는 거 같다. 약간 비극적이다.


신동주: 약간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기독교와 대중이 문화를 대하는 태도는 다른 거 같다. 대중은 늘 즐거워하거나 열광할 것을 찾지만, 크리스천은 늘 조심스럽기만 하다. 기윤실도 ‘성’을 대할 때 위험과 죄로 접근했다. ‘<거짓말> 사태’ 때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읽었다. 나한테 육체적인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발기한 게 아니라 눈물을 흘렸다. 한 번도 성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건, 그 당시 <거짓말>을 반대한 기독교인들이 “너는 이 작품을 보면 너의 성기는 발기할 수밖에 없어”라고 주장했다는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자기의 경험이나 생각을 강요하는 건 폭력이다. 100%를 순수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100%이기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강요하게 된다. 고종석이 “모든 순수주의는 폭력과 맞닿아있다”고 했다. 크게 공감한다. 


*방송 듣기: [박샘의 위대한 수다 에피소드 11] '내가 버린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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