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 '안티고네' - 차별금지법 반대를 외치는 자들에게 향유/Book 2013.05.01 15:12



작품 소개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와 더불어 오이디푸스 3부작 중 하나이다. 세 작품 중 시대순으로 따지면 가장 마지막 이야기이지만, 이야기의 시작인 <오이디푸스 왕>보다 먼저 쓰였다. 소포클레스는 당시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상연하기 위해 3부작을 써야 했던 전통과 관습을 의도적으로 깨뜨리고 독립적인 작품으로 구성했다.


줄거리


오이디푸스 왕이 죽고 나서 아들인 폴레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왕권을 놓고 다툰다. 결국 둘 다 죽게 되고, 그들의 삼촌인 크레온이 왕이 된다. 그런데 두 조카의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만 성대히 장례를 치러주고, 테베 입장에서 반역자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매장하지 말고 들에 버려두라는 포고령을 내린다.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포고가 내려지고, 두 딸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오빠 폴뤼네이케스의 시체를 매장할지를 두고 논쟁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안티고네는 혈육인 오빠의 시체를 매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스메네는 크레온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폴뤼네이케스의 시체를 장사지내고 결국 생매장형에 처한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크레온 왕의 아들 하이몬은, 평소 연모한 안티고네를 따라 죽기로 하고, 아버지에게 칼까지 꺼내 든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이미 목을 맨 상태고, 하이몬도 그 자리에 칼로 배를 찔러 자살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들은 크레온의 아내 에우리디케도 침대에서 자살한다. 



하나님의 법이냐, 국가의 법이냐


30대에 들어서면서 어른의 처지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가령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조금은 비겁해진 아버지들이나, 자기 아이들에게만 모든 관심이 집중된 엄마들, 젊은 시절의 꿈 따위는 잊고 내일의 불안으로 전전긍긍하는 선배들. 그들의 타협과 자기중심적인 삶은 녹록지 않은 현실을 보면 볼수록 이해되는 것이었다. 20대 때와 달리, 더는 보수적이라는 것이 악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그런 점에서 <안티고네>에 등장하는 크레온은 악인이라기보다는 공감되는 인물로 다가왔다. 테베왕인 크레온은 국가의 기틀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반역군인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곱게 치를 수 없었다. 크레온은 “그래도 착한 이에게 나쁜 자와 같은 몫이 주어져서는 안 되지”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주 망월동 묘지에 광주 학살자와 광주 항쟁 시민군이 동시에 묻히는 것이다. 따라서 크레온이 테베의 왕으로서 반역자를 일벌백계하여 국가를 위해 군인들이 헌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결정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녀 입장에선 폴뤼네이케스나 에테오클레스나 모두 한 혈육이요, 한 핏줄이다. 안티고네에게 그 둘의 정치적 입장은 고려 요소가 아니다. 오직 오빠의 시체를 매장하여 장례를 치르는 것이 그녀가 해야 할 도리였다. 이것은 천륜을 따르는 것이기도 했다. 그 누구도 하데스 신이 관장하는 죽음의 세계를 인위적으로 침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나라의 기틀을 세우려 하는 크레온의 국법과 순리를 따라 하데스 신에게 죽은 자를 보내려 하는 안티고네의 신법은 충돌한다.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폴뤼네이케스를 몰래 장사지낸다.


사실 둘 다 나름의 타당성이 있다. 선뜻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난감하다. 결국 이런 종류의 문제는 옳고 그름보다는 상위법과 하위법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현명한 듯 보인다. 우선 헤겔이 옹호한 크레온의 입장에 볼 때, 안티고네의 주장은 사사로운 것이다. 그것은 친족과 관련한 것이다.


반면, 안티고네의 입장에서 볼 때, 크레온의 주장은 신의 뜻을 거스르는 인간적 주장에 불과하다. 죽음 이후의 삶까지 인간이 통제하려는 것은 오만한 것이다. 그리고 착한 이와 나쁜 자에게 같은 몫을 줄 수 없다는 크레온을 향해 안티고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입장에서 2500년 전의 사건에 개입할 때, 누구의 편을 들어줄 수 있을까? 아무래도 신자로선 안티고네의 편을 드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크레온의 정치적 합리성을 넘어, 신법과 사랑을 외친 안티고네가 그리스도의 말씀과 가깝기 때문이다.


<안티고네>로 본 차별금지법


하지만 오늘날 현실의 문제에선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차별금지법을 두고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성 소수자들을 몰아붙였다. 그들은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학교에서 ‘항문섹스’가 일어날 것이라며 선정적 언사들을 마구 쏟아냈다. 동성애자와 비동성애자를 똑같이 대우하려는 차별금지법이 하나님의 법도에 어긋나는 것처럼 몰아갔다. 마치 크레온이 폴뤼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를 차별하여 대우하려 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예수를 믿지 않는 안티고네는 오빠들의 정치적 행동과 상관없이 그들의 존재 그 자체를 보려 했다.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징벌적 정의에 맞서, 미움이 아닌 사랑을 주장하며 죽음까지도 불사했다.


나는 그녀의 숭고한 신념을 보며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는 어떻게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그 누구도 저항하지 못한 절대 권력 앞에서 어떻게 저리도 당당할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안티고네는 다음과 같이 나에게 답하고 있다.


“크레온, 너는 네 좋을 대로 생각해. 그래도 나는 그분을 묻겠어. 그렇게 하고 나서 죽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우냐! 그러면 나는 그분의 사랑을 받으며 사랑하는 그분 곁에 눕게 되겠지. ‘경건한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 그것은 내가 여기 살아 있는 이들보다도 지하에 계시는 이들의 마음에 들어야 할 시간이 더 길기 때문이지. 그곳에 나는 영원히 누워 있게 될 테니까. 그러나 너는 원한다면, 신들께서도 존중하시는 것을 경멸하려무나.”


우리에겐 어느덧 사랑의 마음도, 내세에 대한 믿음도 희미해진 게 아닐까. 안티고네의 윤리적 죽음 앞에 조의를 표한다. 


p.s. 위 글은 박샘의 위대한 수다 에피소드 9에서 다룬 이야기를 (pd 멋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방송을 들으시려면 여기를 클릭!  

크리스천, '안티고네'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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