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학교 섹스’ - 결혼에서 도망나온 섹스 향유/Book 2013.04.15 16:50




책 소개


<인생학교 섹스>는 ‘일상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알랭 드 보통의 신작이다. 보통은 25살의 나이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소설로 핫하게 데뷔했다. 연인관계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거기에 철학적인 사색까지 더하며 대중에게 어필했다. 이후로도 <우리는 사랑일까>, <여행의 기술>, <불안>,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등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면모를 이어 갔다. 


이번 책은 그가 ‘배움을 다시 삶의 한가운데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2008년도부터 런던에서 문을 연 ‘인생학교’ 프로젝트다. 그 학교에서는 ‘돈, 시간, 일’ 등 일상적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통찰을 제공했다. 


알랭 드 보통은 30만 팔로워를 거느린 파워 트위터리안이기도 하다. 놀라운 건 그중 1/3에 해당하는 친구가 한국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는 한국에서 여성들이 이해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냐고 했다. 그가 한국에 끼치는 영향은 만만치 않다.



연인 사이의 성관계


어느 온라인 게시판에서 혼전 성관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글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주된 공격 대상은 기독교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글은 혼전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과 마찬가지로 꽤 폭력적이었다. 왜 결혼 후에 성관계를 하면 안 되는가? 본인이 혼전 성관계를 하는 것을 왜 남에게 강요하려 할까.


물론 나는 혼전 순결주의자가 아니다. 섹스를 결혼 안에 두려는 분들의 입장을 존중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남녀 사이의 성관계의 여러 모습 중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누군가는 자신이 행하고 있는 섹스의 방식, 혹은 섹스까지의 과정을 기준 삼아, 그 외의 다른 형태의 성관계는 잘못/죄인 것처럼 말한다. 도대체 왜들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에서 두 번째 챕터에는 섹스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측면을 이야기한다. 그중 가장 고약한 것은 욕망과 사랑의 어긋남이다. 사랑은 하지만 욕망하지 않을 수 있고, 사랑하지 않는데도 욕망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성욕이다. 그중에 신자인 나에게 가장 걸리는 부분은 사랑 없는 섹스이다. 앞서 쿨한 척 말했지만, 나는 섹스를 사랑 안에 두려는 사람에 속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나의 기준이 다른 형태의 성관계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일단 섹스가 먼저 시작되고 그다음에 사랑이 따라오는 것(안 따라올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랑과 섹스의 엇박자에 대해 좀 더 여유로워질 필요가 있겠다. 그래야 이 문제를 좀더 현명하게 접근할 수 있을 거 같다. 


포르노와 기독교 미술


섹스도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외로운 밤을 포르노로 때우기 일쑤다. 유경험자들은 느끼겠지만, 포르노를 보고 나서 밀려오는 자괴감과 허무함은 꽤 크다. 그런데도 포르노의 강렬함을 대체할 만한 자극을 찾기는 쉽지 않다. 포르노는 강하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러한 포르노에 비판적이다. 왜냐하면, 고독과 대면할 소중한 시간을 포르노가 앗아가기 때문이다. 밤에 밀려드는 울적함과 외로움은 나와 내 주변을 성찰할 좋은 기회이다. 하지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포르노는 고독한 사색 따위는 개나 주라는 듯이 시간의 공백을 채우려 든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은 포르노의 고급화를 주장한다. 마냥 피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리라. 그가 제시하는 고급화의 예는 기독교 미술이다. 


“성적 욕망으로 우리의 고결한 가치관을 손상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지하도록 도와주는 포르노. 사실 그런 유형의 포르노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분야가 이미 존재하기는 한다. 설마 싶겠지만, 정말 의외로, 기독교 미술 분야가 바로 그것이다.”(187)


가령 기독교 미술에서의 성모 마리아는 고결한 인간임과 동시에 미묘한 방식으로 매혹적 여인임을 나타내 준다. 예를 들어 보티첼리의 성모 마리아는 성욕과 윤리의식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좋은 작품이다. 


글쎄, 이런 식의 대체 포르노들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하긴 미래의 포르노라고 하니까,  지금의 일차원적 포르노와는 다르긴 할 것 같다. 물론 혹자는 그런 식의 포르노라면 차라리 조금 야한 멜로를 보는 게 낫다고 반문하기도 하지만, 포르노는 어쨌든 그 짓(?)을 하기 위한 것에 봉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게 볼 필요가 있을 거 같다. 


어찌되었든 연인 간의 성관계나 포르노는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 누구도 자신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점이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욕이라는 고약한 선물로 준 이유이지 않을까. 


p.s. 위 글은 박샘의 위대한 수다 에피소드 6에서 다룬 이야기를 (pd 멋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방송을 들으시려면 여기를 클릭!  




[박샘의 위대한 수다 팟캐스트] 크리스천, '인생학교 섹스'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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