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섹스'-성욕을 회개하던 그날 향유/Book 2013.04.15 14:58




책 소개


<인생학교 섹스>는 ‘일상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알랭 드 보통의 신작이다. 보통은 25살의 나이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소설로 핫하게 데뷔했다. 연인관계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거기에 철학적인 사색까지 더하며 대중에게 어필했다. 이후로도 <우리는 사랑일까>, <여행의 기술>, <불안>,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등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면모를 이어 갔다. 


이번 책은 그가 ‘배움을 다시 삶의 한가운데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2008년도부터 런던에서 문을 연 ‘인생학교’ 프로젝트다. 그 학교에서는 ‘돈, 시간, 일’ 등 일상적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통찰을 제공했다. 


알랭 드 보통은 30만 팔로워를 거느린 파워 트위터리안이기도 하다. 놀라운 건 그중 1/3에 해당하는 친구가 한국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는 한국에서 여성들이 이해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냐고 했다. 그가 한국에 끼치는 영향은 만만치 않다.



왜 모두의 성관계는 이상한가


고등학교 시절, 통제할 수 없는 성욕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특히 보수적인 교회 문화에서 자란 나는 성욕을 죄와 동일시했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해도 내 성욕은 변태적이었기 때문이다. 예배 시간에도 이성의 전라가 떠올랐고 심지어 섹스하는 장면까지 내 상상에 가득했다. 더러운 이미지들을 떨쳐내려고 할수록 더 많은 성적 심상들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처음 영접이라는 걸 할 때, 내 성욕에 대한 회개로 시작했다. 


크면서 알게 된 일이지만, 이건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들끓는 성적 리비도 때문에 이상한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 의구심이 늘 따라다녔다. 이 모든 문제는 예수를 믿는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신 성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었다. 


알랭 드 보통은 <인생학교 섹스>를 쓰며 첫 챕터를 '왜 모두의 성관계는 이상한가'로 시작하고 있다. 그는 "섹스에 관한 한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며 "대부분이 죄책감과 노이로제, 병적 공포와 마음을 어지럽히는 욕망"(18)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이상한 성에 대한 처방으로 '병원'이 아닌 '호스피스'를 내세운다. 전자는 문제를 치료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고통을 덜어주는 도움을 주는 곳이다. 성욕이라는 것은 늘 문제적이며 정상적 단계도 없다. 단지 고통을 경감시키고 평생을 관리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이러한 조언이 적어도 내겐 위안이 됐다. 


스킨십


성인이 되고 난 뒤 연애를 시작했다. 가장 설레면서 짜릿한 건 역시 '스킨십'이었다. 하지만 신자인 나에게 스킨십은 단지 즐기기만 할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순결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교회나 연애 관련 기독교 서적에서는 키스 이상으로 가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성관계로 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이 스킨십을 설명하는 방식은 많이 달랐다. 그는 키스는 외로움의 극복, 옷을 벗는 행위는 성적 수치심에서 벗어나 서로를 받아들이는 행위, 흥분은 진실하고 솔직한 신호, 오르가즘은 고독과 소외가 극복되는 짧은 순간과 같은 식으로 스킨십을 설명했다. 마치 어린 시절, 부모에게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고 사랑받았듯이 스킨십이라는 건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각 단계에 따른 이런 의미부여는 내게 새로운 것이었다. 


가령, 페티쉬도 이런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다. 특정 사물이나 부분 대상에 끌리는 것은, 그것과 관련한 스토리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남자의 손목시계에 꽂힌다면, 아마도 그 여성은 손목시계와 관련한 아름다운 추억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자상함이 그 손목시계와 함께 떠오를 수도 있겠다. 


물론, 페티쉬에 과도한 측면이 존재한다. 특히 부부 관계에서 특정 페티쉬는 상대 파트너를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대화가 필요하다. 몸의 대화 말이다. 그리고 페티쉬의 이면을 바라볼 줄 아는 시선이 필요하다. 


외모


인간은 아름다운 상대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도 다 제각각이다. 누구는 섹시한 외모에 끌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포용력 있는 외모에 매력을 느낀다. 책에 따르면, 전자는 스칼렛 요한슨, 후자는 나탈리 포트만에 해당할 수 있겠다.


물론 객관적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의식적인 문제가 아니다. 본인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대부분 상대의 외모/분위기와 연결되어 있다. 보통은 “얼굴을 통해 그 사람과 성공적인 관계를 맺는 데 유익할 만한 내면적 특징을 객관적으로 탐지”(79)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면의 결핍을 보상해주고 건강한 상태를 되찾도록”(91) 도와준다고 한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보통의 이런 통찰은 새로웠다. 나는 외모가 보잘것없어도 내면은 아름다울 수 있다고만 생각해 왔다. 그리고 외모를 보는 주변인들을 약간은 정죄했다. 그런데 외모는 단지 외모가 아니었다. 꼭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라, 그 외모를 통해 드러난 내면의 특징을 살피는 것은 성경과 대립하지 않았다. 그러면 나의 외모는 어떤 분위기, 어떤 내면을 반영하고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p.s. 위 글은 박샘의 위대한 수다 에피소드 6에서 다룬 이야기를 (pd 멋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방송을 들으시려면 여기를 클릭!  




크리스천, '인생학교 섹스'를 읽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 PREV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NEXT >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