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톺아보기 11] 악(evil)이란 무엇인가? 해석/View 2011.10.18 23:48




엘륄은 악(마)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악(마)은 오직 인간의 관계에서만 존재할 뿐이기에, 인간이 없는 곳에는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악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악의 기운을 느낀다. 권력에서 돈에서 섹스에서 말이다. 

내가 생각할 때, 악은 '법을 위반하고 싶은 충동'에 다름 아닌 것 같다. 인간은 '하라' 혹은 '하지말라'는 법 앞에서 늘 어기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사도 바울은 이를 '율법으로 일어나는 죄의 욕정'(롬7:5)이라고 표현했으며, 자신이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악한 일을 한다고 토로했다. 태초에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법 앞에는 그 위반을 부추기는 뱀이 (비유적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법 위반의 유혹은 당연히 그렇겠지만, 그분의 창조가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창조가 '사랑'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사랑하는 자에게 자유를 선사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인격의 핵심, 그분께서 인간에게 불어넣으신 생기의 핵심이다. 

결국 악을 이기는 건, 법을 위반하고자 하는 충동을 이겨내는 데 있다. 그것은 교회에서 쉽게 생각하듯이 '법을 따르라!' '법을 지켜라!'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법에 대한 재강조는 역설적이게도 법 위반을 부추기는 기제로 작동한다. 이것은 왜 우리가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지를 말해준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죄책감의 올무에 갇혀 그분의 법을 피하는 자, 곧 첫 아담으로 되돌아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악을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지도 않았던 법위반을, 거기서 오는 쾌락을 쫓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힘주어 강조해야하는 것은 자유이다. 이것은 단지 법을 지키는 것과는 다르다. 자유는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되는 것이다. 우리를 정죄하고 사망으로 이끄는 율법에서 해방되어 성령의 법, 자유의 영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롬8:4) 그렇다면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착각하기 쉽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다. 남녀 관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다툼을 생각해보자. 

연인들이 (수많은) 기념일을 꼭 지키자는 룰을 정해놨을 때, 그것을 지키는 것이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지켰기 때문에 상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많은 기념일을 다 챙겼는데, 내가 뭘 더 해야하느냐는 (흔히 남자들의) 강변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하지만 (보통 여자가) 기념일을 지키자고 한 것은 나에게 집중하고 사랑해달라는 표현이지 기념일을 지켜달라는 단순한 요구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룰을 어기고도 상대를 만족시킬 수 있으며 룰을 모두 지키고도 상대를 불쾌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룰을 지키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 (율법적) 요구 뒤에 있는 (사랑의) 욕망을 충족시킬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율법을 지키는 데서, 나아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다. 

반복해서 이야기 하지만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는, 그래서 괴로운) 법을 위반하고자 하는 쾌락의 압박을 덜어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기는 커녕, '법을 지키라'고 말함으로써 그 압박을 더욱 부추기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우리의 해법은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는 데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바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때에서야 비로소 (보험회사가 위협하는) 죽음도, (홍상수식 비루한) 삶도, (신비로운) 천사들도, (억업하는) 권세자들도, (꼬일때로 꼬인) 현재 일도, (암담한) 장래 일도, (스펙) 능력도, (지위의) 높음도, (영적인)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제 1 계명으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사랑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습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은 연애를 하든 공동체를 하든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데 익숙하다. 연애신학의 정립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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