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와 판소리의 만남 - 이자람의 <억척가> 향유/Theater 2011.07.13 16:54

현대 연극에 있어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고유명사이다. 브레히트는 ‘낯설게하기’라고도 부르는 ‘소격효과’를 창안하며, 자신의 연극을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연극의 유희적 측면 또한 핵심으로 여겨 배제하지 못했고, 소격효과는 그의 연극 안에서 문학적으로 승화되어 버렸다. 비록 브레히트는 자신이 노렸던 소격효과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관객들은 그의 연극을 예술적으로 향유하게 되었으며, 그의 활동은 이후의 연극사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현재 한국 연극에서도 브레히트는 하나의 주요한 장르로 자리매김 하였다.

70년대 한국 연극인들은 브레히트가 노렸던 집단적 각성과 마당극이 구사하는 한데 어우러지는 신명의 관련성에 집중하며 브레히트를 수용, 연구하였다. 더구나 브레히트의 서사극적 방법론은 일본의 전통극에서 착안되었다고 하니, 우리의 마당극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극문화와 태생을 공유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자람이라는 걸출한 판소리 예술가가 등장하여 아예 브레히트와 판소리를 적응단계 없이 그대로 묶었다. 그녀는 브레히트의 대표작 <사천의 착한 사람들>을 2007년 <사천가>라는 이름으로,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2011년 <억척가>라는 제목의 판소리로 무대에 올렸다.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는 판소리를 만나며 그 효과가 배가 되었다. 브레히트 극의 인물은 구체적 묘사가 필요한 사실주의 극과 달리 도식화된 캐릭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판소리에서 1인이 해설자 역할과 극중 다양한 역할을 모두 소화해내는 형식에 걸맞기도 했다.

 
원작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은 ‘30년 전쟁의 한 연대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전쟁동안 한 가족은 억척스럽게 살아남아야만 했는데, 정작 모성을 상징하는 ‘어멈’은 아이들을 모두 잃는다. 하지만, 억척어멈은 전쟁터를 쫓아다니는 포장마차 상인으로서 ‘전쟁은 곧 사업이다.’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기에, 오히려 자식들을 앗아간 그 전쟁이 끝날까봐 전전긍긍한다. 줄거리 자체부터 제목까지 역설과 모순을 담고 있는 신랄한 구조다. 

판소리 <억척가>는 여기에 해학과 관객몰이를 더하며,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 이야기도 더해진다. 서기 180년 한반도에서 김순종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유교정신에 희생되며 소박을 맞아 연변으로, 그리고 한나라로 흘러들어간다. 아비가 다른 자식 셋을 얻은 후 주인공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김안나로 개명, 억척이로 불리며 전쟁을 배경으로 생계를 연명한다. 아들들이 삼국지의 조조와 손견의 군사로 각각 들어가는 식으로 판소리<적벽가>의 설정들을 끌어와 원작을 재구성하는 등, 다양한 각색과 대사의 변주로,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브레히트의 원작보다 더 익숙하해졌고 <억척가>는 원작보다 더 가벼워진다. 더불어 극 중간에 실제로 관객들에게 막걸리를 돌리는가 하면, 관객의 몰이를 이끌어내는 배우 이자람의 재간도 어지간하다.




 
판소리는 당대의 유희로서 존재했고, 셰익스피어는 당대의 대중연극이었는데, 고전이란 이름을 덧입고 시대를 묵히는 동안 어느새 어렵고 거리가 먼 추상적 학문이 되며 작품의 진실은 소외되곤 한다. 이자람의 퓨전 판소리는 그 고정관념을 깨끗이 지워준다. 연기뿐 아니라 대본, 작창, 음악감독을 한 이자람의 말에 따르면, <억척가>가 원작의 의도에서 벗어낫기에 브레히트는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하지만, 브레히트 또한 연극의 유희적 요소를 놓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자람의 작업은 원작의 의도를 살렸던 <사천가>와는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브레히트는 나치즘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고, 미국의 반공주의 때문에 동독으로 또다시 망명을 떠났는데, 동독에서조차 체제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의 전쟁과 산업화의 팽창과 인간소외에 대해 치열하게 하던 고민을 작품에 담았다. 7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먼 나라에서, 브레히트의 고민이 동시대적으로 재생산되며 동시에 전통문화에 대한 환기까지 이루어지는 것은 <억척가>의 빛나는 장점이다. 
 
이자람과 극단 판소리만들기 ‘자’, 남인우 연출이 함께 작업한 <사천가>는 최근 프랑스 현지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기도 했고, 불어판 희곡집도 출간되었다고 한다. 그 후속작으로 올라온 이번 작품인 <억척가>는 그 이상의 대중적 호응이 기대되며, 이들의 행보가 또 다른 어떤 작품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 기독주간(www.cnews.or.kr)에 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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