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 감동의 근원은 어디서 향유/Media 2011.03.30 02:15

3/27에 방영된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줬다. 호불호의 문제는 있겠지만, 7명 모두가 최선/최고의 무대를 보여줬다는 점에 대해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 최선/최고의 무대가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이소라를 비롯한 많은 시청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가 안 되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정하기도 힘든 부분이 있다.

원래 나는 자신만의 색깔로 정상에 선 가수들을 경쟁에 붙이는 것이 못마땅했다. 나는 그것이 범주 오류라고 생각했다. 취향의 문제를 경쟁이라는 우열의 문제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피카소, 마티스, 파울 클레등을 경쟁에 붙이는 건 말도 안 된다는, 프로그램 자체가 미스컨셉션이라는 진중권 선생님의 생각에 동의했다.


진중권 트위터 타임라임 캡쳐

그런데 문제는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제 나가수의 출연 가수들이 근래 보기 드문 좋은 무대를 보여줬다는 데 있다. 이건 앞서 기획 자체가 오류라고 지적했던 당위론적 차원과 달리, 이미 벌어진 (좋은 무대라는) 효과에 대한 평가라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 효과는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 이소라의 말처럼 경쟁 때문이었을까? 사실, 나가수에 출현하는 가수들은 심야음악방송에서나 볼 수 있지, 일요일 황금시간대를 장식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나가수는 '서바이벌'이라는 대중적 형식을 통해 좋은 음악을 들려주려는 기획하에 진행된 것이고, (적어도 어제는) 성공했다. 그래서 이소라의 말을 부정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고재열 기자는 나가수의 (서바이벌이라는) 포맷 자체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그는 논의의 맥락을 '취향-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가수-예비가수'의 문제로 계열화하며, 왜 프로 가수들은 예비 가수를 평가하면서 왜 프로 가수들은 대중의 평가를 받으면 안 되냐고 반문한다. 그는 이 문제를 학생이 교수를 평가하는 문제로 비유하며, 위계관계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가수가 최선의 형식은 아니지만 어떻게 진정성있는 음악프로그램을 구현하느냐고 질문하며, 결국 그는 경쟁이라는 대중적 형식이 좋은 음악을 구현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현실론을 펼치고 있다. (고재열, <나는 가수다>를 폐지하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이유들)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하는 것은 경쟁이라는 포맷을 통해 구현된 좋은 무대는 어떤 '좋은' 무대였는가다. 우리가 경쟁을 문제 삼을 때, 표준적 비판은 '판단의 기준'에 관한 것이다. 경쟁은 특정한 기준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고, 그 기준과 다른 재능이나 잠재력은 애당초 배제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경쟁에 임하는 참가자들은 자신의 독특한 재능과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보다는 그 기준에 맞춰 노력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우리는 다양성보다는 표준화되는 사회 속에 놓이게 된다. 가령 문강형준씨의 경우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현재 나가수의 판단 기준은 '가창력'이다. 그렇게 될 경우, 박정현이나 김범수같은 폭발적인 가창력을 자랑하는 가수들의 독과점이 이뤄지며, 트로트, 힙합, 재즈, 모던락 같은 음악인은 배제되게 된다. 그는 이를 '감동이 만드는 배제'라고 말하며, 프로그램은 지극히 보수적으로 돼간다고 지적한다.  

문강형준 트위터 타임라임 캡쳐

쟁점은 경쟁의 효과에 관한 다른 두 판단이다. 한쪽은 경쟁 특정 음악의 독과점을 낳으며, 다른 음악의 배제를 낳는다는 말하고, 다른 한쪽은 경쟁이 아이돌에 지배된 현실의 악조건 속에서 좋은 음악방송을 구현하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나는 경쟁 일반에 대한 입장차를 확인하는 것보다 '어떤' 경쟁이냐를 묻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가수가 경쟁의 논리에 함몰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제) 생존과 관련된 경쟁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 경쟁은 1등이 되기 위해 누구를 밝고 올라서는데서 긴장이 유발되기 보다는 누가 7위가 될 것인가에서 (사디즘적) 재미를 준다. (그런 점에서 나는 김건모 재도전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공정성 보다는 사디즘적 쾌락의 배반에 대한 것으로 읽는다.) 

사실, 출연 가수들은 '진정한 가수'라는 공통분모 위에 정서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그들은 진심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의 진정한 바람은 자신이 1위를 하는 것에 있다기 보다는, 누구도 떨어지지 않는 것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 내 눈 앞에 어떤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그 사람이 떨어졌으면 하고 바라지 않으며, 다른 가수의 노래를 즐기고 있다. 단지 자신이 7등 이라는 제물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자기 자존심과의 싸움이 괴로울 뿐이다. 따라서 대중은 여기서 다른 가수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며 노력하는 가수를 보게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나가수의 경쟁은 특수한 조건 속에서의 경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적으로 겪는 경쟁을 나가수에 투사하여 평가할 때, 많은 점에서 빗나가기 마련이다. 사실 내가 선호하는 형식은 경쟁보다는 연대에 있기 때문에, 나가수가 주는 감동이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될 때, 불편하다. 그렇다고 '경쟁'이라는 형식 자체가 문제라는 당위론적 주장을 반복하는 것이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아마도 최선은 멋진 연대의 장으로서 좋은 공연을 보는 것일테고, 차선은 경쟁하되 연대의 정서를 밑바탕에 두는 모습일 게다. 그런 점에서 나가수는 차선의 모습을 어느 정도 보여줬다고 생각된다. 





그 밖의 글
1. 박진성, <나는 가수다>를 본 당신, 왜 눈물을 흘리나? (프레시안) 박진성 시인은 나는 가수다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경험에 대해 말하며 눈물의 이유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당신은 당신이 좋아서 미치겠는 일을 하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의의 경쟁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나는 가수다를 옹호하고 있다.

2. 용짱, <나가수, 예술세계의 평가와 예술가의 붕괴>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대중문화의 양가적 성격에 주목하며, 예술성을 확보한 가수들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밖에 없던 이유, 그리고 결과 발표 이후 붕괴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설명한다. 

음악 링크
1. 태연 & 박효신 <제발> 
2. 이소라 & 박효신 <제발> 잘 보이진 않지만 박효신은 울면서 부른 것 같네요.
3. 박정현 <첫인상> 반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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