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대하는 세 가지 태도 해석/이론창고 2011.03.25 17:33

“자연미는 비록 자연 대상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실제로 확장 시켜주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단지 기계적 체계로서의 자연에 관한 우리의 개념을 예술로서의 자연의 개념으로 확장시키며, 이러한 확장은 그러한 형식(자연미)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에 관한 깊은 연구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서 우리가 흔히 숭고하다고 부르는 것에는 특수한 객관적 원리들과 이러한 원리들에 적합한 자연의 형식들로 인도하는 것이라곤 전혀 없으며 그래서 자연은 오히려 그 혼돈에서 또는 가장 거칠고 불규칙적인 무질서와 황폐에서-단지 크기와 힘만 보인다면- 숭고의 이념을 가장 많이 일깨우는 것이다.” 칸트 <판단력 비판> 중




우리가 보는 것(대상)은 당연히 보는 것 그 자체(물자체)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은 우리의 오감을 통해 걸러지고 우리의 인식능력들(상상력과 지성)에 의해 매개된 것이다. (따라서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오감이 발달된 사람(남자보다는 여자가, 여자보다는 게이가)은 더 섬세하고 풍성하게 본다.) 이것은 칸트가 스스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자칭했던 인식론의 전환으로 보여주는데, 사물이 우리의 인식에 (순수하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이 사물을 구성해내는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우리의 머리 속을 흰 도화지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물이 그 공백에 채워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보는 방식에 따라 동일한 그림을 할머니로 혹은 아가씨로 보는 경험을 상기해본다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을 때, 우리는 사물 자체를 온전히 볼 수 없다는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사물의 세계가 아니라 표상(재현)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전자가 인식의 주체와 별개의 (사물)세계 (혹은 타자)를 설정하고 있다면, 후자는 관념론적 개념으로, 모든 대상은 인식 주체에 의해 ‘앞에(다시) 세워진’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관념론은 주체중심주의로 비판받는다. 모든 것을 주체로 포섭하여 폭력적으로 사물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서도 충분히 경험하는 부분이다. 가령 내가 부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상대방은 자신의 부모와의 경험에 의거해서 내 부모를 오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관념론을 주체중심주의로 쉽게 비판할 수는 있지만, 어떤 대상을 주체 혹은 자신의 재현체계로 포섭하는 폭력을 범하지 않고 어떻게 대상 자체를 이해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로 남는다.

이 때 칸트가 <판단력 비판>을 통해 ‘아름다움’을 말하며, 개념 없이 보편적인 것에 이르는 미학적 판단(반성적 판단)을 말한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개념은 어떤 규정 혹은 규범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규정에서 벗어나는 것은 배제하거나 재단하기 쉽다. 하지만 그 개념 없이 대상을 의식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훨씬 덜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상 자체에 가까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다. 그래서 칸트는 자연미가 자연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켜주지는 않지만 예술로서의 자연 개념은 확장시켜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과학적 대답과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는 예술적 답을 비교해 본다면, 어느 쪽이 우리를 더욱 확장시켜주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숭고’를 말해본다면, 그것은 표상과 같이 모든 것을 주체로 포섭하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움과 같이 ‘개념 없이’ 덜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상에 다가가는 것도 아닌, 단적으로 큰 어떤 대상 앞에 주체가 무력해지는 상황을 말한다. (물론 칸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감성적 직관을 통해 무한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불쾌는 쾌감으로 변하고 우리는 무력감에서 벗어나 숭고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의 표상체계로 포섭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은 우리에게 불쾌감을 주고 마음의 동요를 안겨준다. 이것은 내가 대상을 앞에 세운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압도한 것이기 때문에 배제하거나 억압할 기회조차 없다. 아마도 이것이 (칸트가 실재하지만 알 수 없다고 말했던) 사물의 세계일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예술(가)은 이 세계를 보여준다. 

by 변칙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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